신앙을 위해 직장·동네를 옮겨야 하나 — 소명의 자리와 일상의 거룩함
신앙생활이 어려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순종인가, 도피인가. 이주와 머묾 사이에서 분별하는 네 가지 시금석.
진리를 향한 정직한 물음과 사유가 머무는 공간, 현대 신학의 흐름 속에서 개혁주의 가치를 탐구합니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순종인가, 도피인가. 이주와 머묾 사이에서 분별하는 네 가지 시금석.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했는가, 성취했는가. 세대주의와 강경 대체신학 사이에서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서는 자리.
웃시야가 죽던 해, 선지자가 본 것은 인간 왕의 빈 보좌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참된 왕이었다. 삼중 거룩의 외침, 숯불의 정결, 그리고 '나를 보내소서'의 응답.
교회에서 자주 듣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 그 안에 담긴 따뜻하고 단단한 진실을 새봄과 함께 천천히 풀어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반역한 사탄을 지금 당장 소멸시키지 않으시는 이유를 개혁주의 섭리론·악의 허용(permissio)·구속사의 내적 논리로 풀어낸다.
광야의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는 왜 얼굴을 가렸는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이 열어 주는 하나님의 자존성과, 그 이름을 자기 것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
유딧은 입술의 속임수로 적장의 목을 벴다. 라합도 야엘도 거짓을 말했다. 정경 안의 거짓말과 외경의 거짓말은 같은가 다른가. 윤리의 차이가 영감의 차이를 드러낸다.
드라마 속 악마는 잊으셔도 괜찮아요. 성경이 말하는 마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패배한 적이에요.
가나안 진멸, 아말렉 학살 — 신무신론자들이 반복하는 이 비난 앞에서, 우리는 본문을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 400년의 유예, 몰렉의 토펫, 헤렘의 언약적 의미까지.
나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안 다닌다는 현대의 유행 명제를 해부한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목양적으로 끌어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은혜의 방편·가시 교회와 비가시 교회의 구분을 통해 개인 신앙주의의 한계를 직면한다.
2세기의 한 부유한 선주가 성경을 가위로 잘랐다. 오늘도 많은 강단이 같은 가위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심판의 자리에서 터진 첫 복음의 말씀 — 한 구절 안에 담긴 창조·타락·은혜언약·그리스도의 승리·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