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누구인가 — 타락한 천사의 신학과 이원론 배격

사탄은 누구인가 — 타락한 천사의 신학과 이원론 배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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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군주가 피 묻은 검을 들고 하늘의 옥좌를 향해 돌진한다. 스크린 속 사탄은 언제나 이런 모습이다. 뿔과 날개, 불타는 눈,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맞먹는 힘. 밀턴의 『실낙원』이 낭만화한 이래로, 사탄은 자존심으로 하늘을 거역한 비극적 영웅, 매혹적인 악당의 원형이 되었다. 판타지 소설, 호러 영화, 심지어 어떤 설교단의 영적 전쟁 강연에서도 사탄은 하나님과 대등한 두 세력 중 하나처럼 그려진다.

이 이미지는 그럴듯하지만, 치명적으로 틀렸다. 그리고 이 오류는 단순히 신학적 정밀도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문제다.

피조된 반역자 — 자존하는 악은 없다

성경은 사탄에 관해 결코 많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하는 대목마다 한 가지를 분명히 한다. 그는 피조물이다. 태초부터 존재한 악의 원리가 아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 이사야 14:12-14

이 본문은 문맥상 바벨론 왕의 교만을 향한 예언적 풍자시(mashal)다. 칼뱅을 비롯한 개혁주의 주해 전통은 이사야 14:4-21 전체를 일차적으로 바벨론 왕에 대한 심판 선고로 읽는다. 그러나 교회는 그 배후에서 더 큰 타락 — 사탄의 반역 — 을 유비적으로 읽어왔다. 이 유비적 독법은 주님 자신에게서 근거를 얻는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누가복음 10:18

선하게 창조된 천사가 자기 의지로 반역했다. 타락의 책임은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 하나님은 오직 선하시며, 피조물의 자유의지가 스스로 뒤틀어진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한 신 앙그라 마이뉴가 영원히 싸운다고 가르쳤다. 마니교는 빛과 어둠을 두 개의 대등한 원리로 세웠다. 영지주의는 선한 영적 신과 악한 물질 창조주를 나누었다. 이 모든 체계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을 둘로 쪼갠 것이다. 칼뱅이 『기독교강요』 1권 14장에서 단호하게 말한 대로, 이는 창조주에 대한 모독이다.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에는 천사 세계까지 포함되며, 사탄을 포함한 모든 영적 존재는 그 “하늘” 안에서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악은 결핍이다 — privatio boni의 존재론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아퀴나스, 개혁주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고백해온 한 가지가 있다. 악은 실체가 아니라 결핍이라는 것(privatio boni). 이 말은 악이 환상이라는 뜻이 아니다. 악은 실재한다. 뱀의 속임, 가인의 살인, 십자가로 끌어간 어둠의 권세는 결코 환상이 아니다.

그러나 악은 독립적 실체(substantia)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 추위가 열의 부재이듯, 악은 선의 부재이자 왜곡이다. 사탄은 창조 밖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선하게 지음받았던 본성을 역전시킴으로써 존재한다. 악은 언제나 선에 기생한다. 자기 발로 설 수 없다.

바빙크가 『개혁교의학』에서 보여준 이 “제3의 길”은 양쪽 극단을 동시에 거부한다. 한쪽에는 이원론이 있다 — 악을 너무 진지하게 여겨 하나님과 맞먹는 자리에 올려놓는다. 다른 쪽에는 동방 범신론과 불교의 śūnyatā 전통이 있다 — 악을 환상이나 집착으로 희석해 버린다. 성경은 둘 다 거부한다. 악은 실재하되, 하나님과 대등하지 않다.

허용의 사슬 — 욥기가 가르치는 주권

사탄의 활동 범위를 가장 선명히 보여주는 본문은 욥기 서막이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 욥기 1:6-7

그는 나아와야 한다. 허락 없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 욥기 2:6

경계는 하나님이 긋는다. 칼뱅의 비유대로, 사자가 쇠사슬에 묶여 있듯 마귀의 광포함도 하나님의 허용(permissio Dei) 안에서만 작동한다(기독교강요 I.xiv.17). 이 사실이 사라지면 우리는 두려워하되 절망하게 된다. 이 사실이 붙잡히면 우리는 경계하되 요동하지 않는다.

십자가 — 이미 결정된 패배

사탄의 운명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이미 선포되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창세기 3:15

그 후손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싸움은 사실상 끝났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 히브리서 2:14-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 골로새서 2:15

히브리서가 쓴 “멸하다”(καταργέω)는 “효력 없게 만들다”는 뜻이다. 사탄이 즉시 소멸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법적 권리가 박탈되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택하신 자들의 죄책을 완전히 소멸시켰기 때문에, 사탄은 더 이상 고발자의 자리에 설 근거를 잃었다. 그는 법정에서 쫓겨난 검사다. 아직 소란을 피울 수는 있으나,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

이미-아직의 전장

그래서 우리는 아직 전쟁 한가운데에 있다. 사탄은 여전히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로 불린다. 베드로는 경고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베드로전서 5:8

그러나 이 사자는 쇠사슬에 묶인 사자다. 최후 명령을 기다리며 전장을 어지럽히는 패배한 장수다.

영적 전쟁의 실상도 이와 맞물린다. 사탄이 불을 들고 올 때, 우리 안의 내주하는 죄가 마른 나무를 쌓아두지 않았다면 불은 발판을 찾지 못한다. 책임은 외부로 전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전투는 기이한 체험이나 축사 의식이 아니다. 에베소서 6장의 전신갑주 —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 — 그 한복판에 놓인 것은 매일 그리스도의 의를 내 의로 붙드는 일이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는 칭의 복음을 확신하는 신자의 양심이다.

스크린의 사탄, 성경의 사탄

밀턴이 낭만화한 비극적 영웅, 스크린 속 뿔과 날개와 불타는 눈 — 이 이미지는 사탄을 숭고하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를 부르신 이름은 다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요한복음 8:44

살인자이자 거짓말쟁이. 숭고함이 아니라 기만. 문화가 그리는 카리스마 있는 악당은 바로 그 거짓의 최신 판본이다. 사탄을 멋있게 그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의 첫 번째 전략 —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유혹 — 을 로맨틱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으로

이 교리는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정반대 방향으로 데려간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경쟁자가 없으시다. 사탄은 피조되었고, 반역했고, 허용의 사슬에 매였으며, 십자가에서 이미 무장해제되었다. 그가 아직 으르렁거리는 것은 승리의 징표가 아니라 패배의 마지막 저항이다. 그리고 그 어느 고발도 이제 택하신 자의 양심에 꽂히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피가 이미 그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로마서 8:33-34

경계하라. 그러나 떨지 말라. 사자는 묶여 있고, 어린양은 이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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