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2부: 그래도 전도해야 하는 이유

예정론 2부: 그래도 전도해야 하는 이유

#변증#예정론#구원론#개혁주의

선택의 그림자

1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일부를 선택하셨다는 성경의 증언을 따라갔다. 그리고 이 선택이 불공정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동전에는 뒷면이 있다. 하나님이 일부를 선택하셨다면,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신학에서 이것을 유기(reprobation)라 부른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 선택과 유기는 대칭적이지 않다.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사용한 언어를 주목하라.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 로마서 9:22-23

“멸하기로 준비된”(22절) — 여기서 행위자가 명시되지 않는다. 반면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23절) — 여기서는 하나님이 주어다. 바울의 언어 자체가 비대칭을 담고 있다. 선택에서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예비하신다.” 유기에서 하나님은 죄인을 그 죄 가운데 “내버려 두신다.”

벨직 신앙고백 16조는 이 비대칭을 더 선명하게 고백한다.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건지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을 던진 타락과 멸망 가운데 내버려 두십니다.

“건지신다”는 적극적 행위다. “내버려 두신다”는 소극적 행위다. 하나님은 죄 없는 존재를 이유 없이 정죄하지 않으신다. 유기된 자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정당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죄를 강요하신 것이 아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예정론은 괴물이 된다. 이 구분을 붙잡으면,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가 동시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운명론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다면, 그것은 결국 운명론 아닌가?” 이 질문은 예정론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에서 나온다. 그러나 예정론과 운명론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

운명론(fatalism)은 비인격적이고 맹목적인 필연이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지는 환상이다. 그리스 비극의 세계관이 이것이다 —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하려 할수록 운명 속으로 빠져든다.

개혁주의의 예정론은 인격적 하나님의 지혜로운 작정이다. 하나님은 목적만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까지 함께 정하셨다. 그리고 그 수단에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포함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1절은 이 점을 정교하게 고백한다 —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서 “이차 원인들의 자유나 우연성이 제거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확립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고 세우신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외부의 강제에 의해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패한 본성이 원하는 바대로 거부한다. 그것은 진정한 그의 선택이다. 따라서 그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같은 층위에서 충돌하는 두 명제가 아니다 — 일차 원인(하나님)과 이차 원인(인간)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유한한 피조물이 무한한 창조주 앞에서 만나는 신비다.

예정론이 전도를 죽이는가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이미 정하셨다면, 전도는 왜 하는가?” 이 질문은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수단을 함께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되, 복음 전파를 통해 구원하신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0:14-15

전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이 시간 속에서 실현되는 수단이다. 바울 자신이 이 확신 위에서 전도했다. 고린도에서 핍박을 당할 때,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셨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 사도행전 18:9-10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물러서지 않았다. 복음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예정론은 전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전도에 확신을 준다.

역사가 이것을 증명한다.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윌리엄 케리 — 교회사에서 가장 강력한 예정론자들이 가장 열렬한 전도자들이었다. 예정론을 깊이 믿었기 때문에 담대했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다.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착각

예정론에 대한 또 하나의 반발이 있다. “다 정해져 있다면, 내가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무의미한 것 아닌가?” 바울은 이 착각을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이미 부수어 놓았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에베소서 1:4

선택의 목적이 무엇인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 내버려 두시려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거룩함을 향해 선택하셨다. 성화는 선택의 열매이며, 하나님이 작정하신 수단이다.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나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거룩하게 살려고 한다. 선택이 거룩함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끊어지지 않는 황금 사슬

예정론이 신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확신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구원의 전 과정을 하나의 사슬로 연결한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로마서 8:29-30

미리 아심 → 미리 정하심 → 부르심 → 의롭다 하심 → 영화롭게 하심. 신학자들은 이것을 구원의 “황금 사슬”(catena aurea salutis)이라 불렀다. 이 사슬의 어느 고리도 끊어지지 않는다. 미리 아신 자는 반드시 영화롭게 된다. 중간에 탈락하는 사람이 없다.

바울은 이 확신 위에서 로마서 8장의 위대한 선언으로 나아간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로마서 8:33, 38-39

이것이 예정론이 도착하는 곳이다. 공포가 아니라 확신. 불안이 아니라 안식. 내 구원이 내 붙잡는 힘에 달려 있다면 나는 매일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내 구원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근거해 있다면 — 어떤 피조물도 나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돌아보는 자에게 보이는 풍경

예정론은 신학의 입구가 아니라 출구다. 아직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택함받았느냐”고 묻는 교리가 아니다. 이미 믿는 사람이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며 발견하는 진리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 결단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지혜도, 나의 의지력도, 나의 선한 본성도 아니었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나를 사랑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택하시고, 때가 되었을 때 성령으로 나를 부르시고, 믿음까지 선물로 주신 분이 계셨다.

이 발견 앞에서 나오는 유일한 반응은 — 바울이 그랬듯이 — 찬양이다.

예정론은 불편한 교리가 아니다. 우리가 불편해하는 것은 은혜가 은혜임을 인정하는 것, 곧 우리가 구원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쉴 수 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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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