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에서 말이 잘 안 나와요 — 내향인 새신자에게

소그룹에서 말이 잘 안 나와요 — 내향인 새신자에게

#새신자#내향인#소그룹#공동체

안녕하세요, 새신자의 친구 새봄이에요.

오늘은 소그룹 모임이나 구역예배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해요. 다들 돌아가며 한마디씩 나누는데,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콩닥거리는 분이 계시지 않나요?

저도 그랬어요.

나는 공동체에 안 맞는 사람일까

몇 해 전 저도 작은 모임에 속해 있었어요. 말 잘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계셨고, 목사님은 질문을 자주 던지셨죠.

저는 늘 맨 뒷자리에 앉았어요. 한마디 꺼내려고 입을 떼면, 이미 다음 사람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어요.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마음이 무거웠어요.

“나는 공동체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봐.”

혹시 지금 이 마음이 익숙하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이 편지가 작게나마 손을 잡아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성경이 더 자주 칭찬하는 것

저는 어느 날 이 구절을 만났어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 야고보서 1:19

신기하지 않으세요? 성경은 “말 잘하라”보다 “듣기는 속히, 말하기는 더디”를 더 자주 말해요.

우리는 종종 신앙이 좋은 사람을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간증을 유창하게 하고, 기도를 길게 하고, 성경 구절을 척척 인용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성경이 칭찬하는 건 조금 달라요. 듣는 귀, 천천히 여는 입, 곁에 가만히 있어 주는 마음이에요.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요

이 구절도 참 좋아해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 시편 46:10

가만히 있는 것이 때로는 가장 깊은 예배예요. 소그룹에서 말을 많이 못 했다고 해서 예배를 못 드린 게 아니에요.

한 사람의 나눔에 귀를 기울이는 것, 누군가의 눈물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 속으로 조용히 “주님, 저분을 도와주세요”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게 이미 공동체의 참여예요. 교회에서는 이걸 코이노니아(함께 있음, 서로 나눔)라고 부르는데요, 핵심은 “말의 양”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에요.

내향인에게 주신 작은 은사

전도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어요.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 전도서 3:7

잠잠할 때도, 말할 때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시간이에요. 내향적인 기질은 고쳐야 할 흠이 아니라, 그분이 당신에게 맡겨 주신 결이에요.

내향인에게는 이런 작은 은사들이 있어요.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힘. 한마디에 무게를 담는 정성. 말없이 곁에서 기도로 지지해 주는 따뜻함.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각자의 자리가 다른 것처럼요(고린도전서 12장). 말 많은 입만 있으면 몸이 아니잖아요. 듣는 귀도 있어야 하고, 조용히 바라보는 눈도 있어야 해요.

작은 한마디로 시작해요

그래도 아주 가끔은 한마디 보태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았어요.” “저도 그 말씀이 위로가 됐어요.” “잘 모르겠지만 더 생각해 보고 싶어요.”

이 짧은 한 줄이면 충분해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멋진 간증을 할 필요도 없어요.

저는 지금도 모임에서 말수가 적은 편이에요. 그래도 이제는 그게 실패라고 느끼지 않아요. 하나님은 저를 이렇게 지으셨고, 이 결대로 그분을 사랑하면 된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거든요.

마무리하며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으셨으면 해요.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은, 당신의 기질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기질 위에 은혜가 스며드는 과정이에요.

오늘은 이 기도를 함께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 저를 이렇게 지어 주셔서 감사해요. 말이 서툰 저도 공동체의 한 자리라는 걸 믿게 해 주세요. 오늘은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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