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신자의 친구 새봄이에요. 차 한 잔 내려 놓으시고 편안하게 읽으셔도 돼요.
오늘은 제가 예전에 밤마다 붙들고 있던 질문을 꺼내 보려고 해요.
“저 분명히 예수님 믿는다고 고백했는데요. 그런데 또 같은 죄를 지어요. 그럼 또 회개해도 되는 건가요? 아니면 저는 진짜 구원받은 게 아닌 걸까요?”
혹시 이 질문, 마음 어디에 살짝 걸려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어요.
회개가 두 종류라는 걸 알게 된 날
어느 날 제가 이 고민을 꺼냈더니,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회개는 문을 여는 회개가 있고,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회개가 있어요.”
이 말이 저를 참 편안하게 해 줬어요.
문을 여는 회개는 단 한 번이에요. 내가 죄인이라는 걸 처음 인정하고, 예수님께 “저를 받아 주세요”라고 나아간 그 순간이요. 이건 다시 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문은 열렸고, 우리는 이미 안으로 들어왔으니까요.
그런데 그 안에서 걸어가는 회개가 있어요. 이건 평생 계속돼요.
루터가 500년 전에 쓴 첫 문장
500여 년 전에 마르틴 루터라는 분이 교회 문에 종이를 붙였는데요. 그 종이의 제일 첫 줄이 이런 말이었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신자의 전 생애가 회개이기를 원하셨다.”
저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살짝 눈물이 났어요. 아, 회개는 평생의 걸음이구나. 자격 미달이라서 계속 하는 게 아니라, 자녀라서 계속 아버지께 다가가는 거구나.
”또 회개해도 되나요?”라는 위축된 질문
저는 예전에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이런 마음이었어요.
“또 이 죄로 와서 죄송해요…”
목소리가 자꾸 작아졌어요. 같은 실수, 같은 넘어짐. 하나님께서 저를 질려 하실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이가 넘어져 울 때, 엄마는 “또 왔니?” 하고 질색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아이가 엄마에게 오지 않는 날을 슬퍼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꿔 물어도 돼요. “또 회개해도 되나요?”가 아니라, “오늘도 아버지께 솔직하게 나아가도 되나요?” 이렇게요.
답은 언제나 네, 예요.
하나님의 약속 한 구절
성경이 이렇게 말씀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요한일서 1:9
여기 “자백하면”이라는 단어가 한 번만 자백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해요. 오히려 계속 자백하는 행위를 가리킨대요. 마치 더러운 손을 매일 씻는 것처럼요.
첫 회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돼요. 그리고 날마다의 회개로 자녀답게 걷는 거예요.
자책과 회개는 달라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꼭 나누고 싶은 게 있어요.
자책과 회개는 다르더라고요.
저는 오랫동안 둘을 헷갈렸어요.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진짜 믿음이 있긴 한 걸까”라고 나를 계속 들여다보면서, 그게 회개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건 회개가 아니었어요. 그냥 저 자신만 들여다보는 거였어요.
누가 이런 말을 해 줬어요.
자책하는 사람은 죄를 보고 자기를 본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를 보고 십자가를 본다.
이 차이가 전부더라고요.
회개는 죄를 인정한 뒤 시선을 예수님께 옮기는 일이에요. 그래서 건강한 회개 뒤에는 이상하게도 기쁨이 와요. 가벼워지는 느낌,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요.
조용한 초대
혹시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셨나요.
괜찮아요. 그 마음 그대로 잠깐 앉아 보세요. 오래 들여다보지 마시고, 고개를 조금만 드셔서 십자가 쪽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실래요.
하나님,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넘어졌어요. 그래도 아버지 앞에 다시 왔어요. 제 죄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볼게요.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