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처음 오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나랑 무슨 관계가 있지?”
좋은 질문입니다. 오히려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쪽이 이상한 겁니다.
먼저, 나의 상황을 생각해 봐요
살다 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잘 해보려 했는데 또 상처를 줬거나,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한계에 부딪히거나. 그게 죄책감이든 허전함이든, 뭔가 채워지지 않는 구멍 같은 것.
성경은 그 느낌에 이름을 붙입니다. 죄라고요. 무서운 단어처럼 들리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문제의 해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빚 청산 이야기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누군가가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습니다.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원금조차 줄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 빚 전부를 대신 갚아줬습니다. 나 대신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고 있는 죄의 무게 — 우리는 그걸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 대신 서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 있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2천 년 전 일이지만, 그 효력은 지금 여기 나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법적으로 갚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해결됐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적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딱 한 가지입니다. 믿는 것.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 로마서 10:9
이것은 조건을 다 맞춰야 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빚을 대신 갚아준 사람의 손을 잡는 것처럼, 그냥 받아들이는 겁니다.
교회에 처음 온 오늘, 여러분은 이미 그 첫걸음 앞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는 2천 년 전 이야기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 당신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