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용어 사전 3부: 교회에서만 듣는 말들

교회 용어 사전 3부: 교회에서만 듣는 말들

#새신자#교회용어#아멘#할렐루야#간증#QT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언어

1부에서는 하나님을 말하는 단어들을, 2부에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일을 담은 단어들을 살펴보았다. 은혜, 영광, 거룩, 섭리, 회개, 칭의, 성화 — 이 단어들은 어렵지만 성경에 뿌리가 있었다. 찾아보면 나온다.

그런데 교회에는 성경에서 왔는지, 전통에서 왔는지, 한국 교회가 만든 것인지 출처조차 모호한 말들이 있다. 아멘, 할렐루야, 간증, 은혜받다, QT. 이 말들은 교회 밖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교회 안에서는 너무 자주 쓰여서 아무도 의미를 묻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들의 뜻을 알면, 예배당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아멘 — 추임새가 아니라 서명이다

설교 중간에 “아멘!” 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하면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 “아멘이 없네요.” 그러면 교인들이 일제히 “아멘!” 분위기에 맞춰 내뱉는 추임새, 호응의 신호. 아멘이 그런 것일까?

아멘은 히브리어 아만(אָמַן)에서 왔다. ‘굳건하다’, ‘진실하다’, ‘확실하다’는 뜻이다. 아멘을 말하는 것은 “지금 들은 것이 참됨을 내 인격으로 확증합니다”라는 선언이다. 법정에서 증인이 진술서에 서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해 없이 외치는 아멘은 읽지도 않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엇에 동의하는지도 모르면서 서명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아멘”이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요한계시록 3:14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의 서명이다. 우리가 아멘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분이 참되시다는 것에 이름을 거는 것이다.


할렐루야 — 감탄사가 아니라 명령이다

“할렐루야! 날씨 좋죠?” “할렐루야, 주차 자리가 났어요!” 교회에서 할렐루야는 거의 감탄사처럼 쓰인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튀어나오는 반사적 표현.

그러나 할렐루야는 감탄사가 아니라 명령문이다. 할렐(הַלְלוּ)은 ‘찬양하라’는 명령형 복수, (יָהּ)는 여호와의 축약형이다. 합치면 “너희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가 된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 다섯 편이 모두 이 한마디로 시작하고 이 한마디로 끝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 시편 146:1

왕이 궁전에 입장할 때 나팔수가 취주하듯, 할렐루야는 만왕의 왕이 이 자리에 계심을 선포하는 나팔 소리다. 주차 자리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할렐루야를 일상의 감탄사로 쓰는 순간, 하나님의 이름은 가벼워진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셋째 계명은 욕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간증 — 자기 자랑이 아니라 증언이다

교회에서 간증 시간이 있다. 사업이 잘 풀린 이야기, 시험에 붙은 이야기, 병이 나은 이야기. 이런 간증이 반복되면, 간증이란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해주신 성공 보고서’처럼 들린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런 생각이 스며든다 — 믿음이 좋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런데 간증은 원래 법정 용어다. 증인이 자기가 목격한 것을 진술하는 행위다. 핵심은 증인이 아니라 증언의 대상이다. 병원에서 나온 환자가 “내가 이겨냈다”고 말하면 자기 자랑이다. “저 의사가 살렸다”고 말하면 증언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요한일서 1:3

성공 이야기만 간증이 되면,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간증할 것이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깊은 간증은 성공의 자리가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서 나왔다.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 욥기 1:21

십자가가 없는 간증은 간증이 아니라 자기 홍보다.


은혜받다 — 감동이 아니라 선물이다

“오늘 설교 은혜받았어요.” “이번 수련회에서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이 표현은 한국 교회에서 특히 자주 쓰인다. 감동적이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났다 — 이런 경험을 ‘은혜받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감동이 없으면 “오늘은 은혜가 없었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은혜는 감정의 온도가 아니다. 1부에서 살펴보았듯, 은혜(카리스, χάρις)는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8

굶주림 끝에 받은 밥 한 그릇은 맛있어서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 살았기 때문에 감동하는 것이다. 은혜는 맛있는 식사가 아니라 죽어가던 자가 살아난 사건이다. 감동은 그 사건을 깨달은 후에 따라올 수 있는 반응이지, 은혜 그 자체가 아니다.

감정을 쫓으면 설교자를 쫓게 된다. “저 목사님 설교는 은혜가 있어, 이 목사님 설교는 은혜가 없어.” 그러나 은혜의 원천은 설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오늘 아무런 감동이 없었더라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이 은혜다.


QT — 의무 숙제가 아니라 조용히 앉는 시간이다

교회에서 “QT 하세요?”라고 물으면, 그것은 대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 읽기 교재를 펴고 본문을 읽고, 질문에 답을 적고, 적용을 쓰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체크리스트처럼 칸을 채우고, 다 채우면 안도하고, 못 채우면 죄책감을 느낀다.

QT는 “Quiet Time”의 약자다. 조용한 시간. 원래는 19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된 습관으로,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떼어놓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는 것이었다. 교재도 없고, 칸도 없었다. 성경 본문 자체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이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 시편 5:3

교재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형식이 내용을 삼켜버리면 문제가 된다. 칸을 채우는 데 집중하면, 한 구절 앞에서 멈추어 씨름하는 시간은 사라진다. 어머니를 오랜만에 찾아뵐 때, 방문 체크리스트를 들고 가는 사람은 없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는 것이다. 그리워서 가는 것이다.

QT의 핵심은 교재를 완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는 것이다.


이 말들을 알면 보이는 것

아멘은 서명이고, 할렐루야는 선포이며, 간증은 증언이고, 은혜는 선물이며, QT는 하나님 앞에 앉는 시간이다. 이 말들을 알고 나면, 예배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르게 보인다.

설교 끝에 “아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호응이 아니라 “이 말씀이 참됩니다”라는 서명이다. “할렐루야”를 부를 때, 그것은 왕의 입장을 알리는 나팔이다. 누군가의 간증을 들을 때,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리고 아침에 성경을 펼 때, 채울 칸이 아니라 만날 분이 기다리고 계신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는 이보다 더 독특한 말들이 있다. 사모님, 권사님, 새벽기도, 부흥회 — 이것들은 성경에도 없고, 세계 교회에서도 잘 쓰지 않는다. 한국 교회만의 언어다. 이 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면, 한국 교회가 왜 이런 모습인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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