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사놓은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엔 진지했습니다. 밑줄도 긋고, 묵상 노트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성경은 책상 위에서 다른 서류 밑에 깔려 있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라면 — 괜찮습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바빠서”가 아닙니다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진짜 문제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쁜 와중에도 좋아하는 드라마는 봅니다. SNS는 새벽까지 넘깁니다. 하루에 10분을 못 내는 것이 아니라, 10분을 거기에 쓰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자라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솔직한 진단입니다. 그리고 이 갈망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 시편 19:7
말씀이 영혼을 소성시킨다 — 살려낸다는 뜻입니다. 읽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주님, 읽고 싶은 마음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첫걸음입니다.
어디서부터 읽을까
창세기 1장부터 순서대로 읽겠다는 결심. 좋은 의도지만, 대부분 레위기에서 멈춥니다. 민수기 7장의 반복되는 봉헌 목록 앞에서 90%가 이탈합니다.
처음이라면 이 순서를 권합니다.
1. 마가복음 — 16장, 가장 짧은 복음서입니다. “곧”, “즉시”라는 단어가 연발되며 숨 가쁘게 달려갑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습니다. 출퇴근 지하철 20분이면 한 장을 읽을 수 있고, 2주면 끝납니다.
2. 빌립보서 — 4장짜리 짧은 편지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쓴 편지인데, 놀랍게도 “기뻐하라”가 반복됩니다. 읽고 나면 성경이 고리타분한 교훈집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3. 시편 — 하루에 한 편씩. 기쁠 때, 힘들 때, 화날 때 — 어떤 감정이든 시편에 이미 있습니다. 잠들기 전 5분이면 충분합니다.
4. 요한복음 — 마가복음이 예수님의 행적을 보여준다면, 요한복음은 그 행적의 의미를 풀어줍니다. 여기까지 오면 성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시작은 가볍게, 깊이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10분이면 됩니다
출퇴근 3시간, 야근 후 밤 11시 귀가. 그래도 10분은 있습니다. 실전 팁 몇 가지입니다.
시간을 정하세요. “여유가 생기면 읽어야지”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출근 전 5분, 점심시간 5분 — 시간을 고정하면 습관이 됩니다.
짧아도 괜찮습니다. 한 장을 다 못 읽으면 반 장만 읽으세요. 한 구절이 마음에 박히면 그날 몫은 충분합니다.
오디오 성경을 활용하세요. 출퇴근길, 운전 중, 설거지를 하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읽는 것과 듣는 것을 병행하면 말씀이 더 깊이 들어옵니다.
읽기 전 한 마디 기도를 하세요. “주님, 이 말씀에서 당신을 만나게 해 주세요.” 이 짧은 기도가 성경 읽기를 ‘공부’에서 ‘만남’으로 바꿔줍니다.
완독 강박을 버리세요
1년 완독표는 좋은 도구이지만, 첫 번째 성경 읽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진도를 맞추느라 읽은 것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보다, 마가복음을 세 번 정독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경은 시험 교재가 아닙니다. 빨리 끝내야 할 과제가 아닙니다.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아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 그것이 말씀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QT 교재도 좋은 입문 도구이지만, 목적지는 아닙니다. 교재의 해설에 기대지 않고, 언젠가 성경 앞에 혼자 서는 날을 향해 자라가는 것 — 그것이 방향입니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성경은 66권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오셨는가 — 이 하나의 줄기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계시록까지 흐릅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나중에 레위기의 제사 규정을 읽을 때 “아, 이것이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었구나” 하는 순간이 옵니다. 시편의 탄식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 고통과 겹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성경은 더 이상 낯선 옛날 책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 마가복음 1장을 펴 보세요. 10분이면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게 진짜야?” “여기 모순 아니야?” “이건 너무 비과학적인데?” — 그 질문이 올라올 때, 많은 사람이 성경을 덮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야말로 다음 단계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의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