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신자의 친구 새봄이에요.
오늘은 교회에서 아주 자주 듣는 말 하나를 천천히 꺼내 보려고 해요.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에요.
예배 때도, 찬양 가사에도, 설교 끝자락에도 나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예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나한테 실감이 안 나.”
혹시 비슷한 마음이셨다면, 오늘 이 편지는 마침 잘 도착한 거예요.
세 가지 오해부터 살짝 걷어낼게요
새신자 분들이 이 말에 걸려 넘어지는 지점이 주로 세 가지더라고요.
첫째, “그럼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 아닌가요?” 하는 질문이요. 창조주라는 의미에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세요.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조금 다른 차원이에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요한복음 1:12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표현을 보세요. 이미 다 그런 게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새로 주어지는 자리라는 말이에요.
둘째, “내가 착하게 살아야 자녀가 되는 거죠?”라는 오해예요. 한국 문화에서는 효(孝)가 깊이 배어 있어서, 자꾸 ‘내가 잘해야 진짜 자녀’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성경은 반대로 말해요. 자녀가 된 뒤에 자녀답게 사는 거지, 자녀답게 살아야 자녀가 되는 게 아니에요.
셋째, “아빠 아버지라고 불러도 눈물이 안 나요. 전 자녀가 아닌가 봐요.” 이건 제가 오래 붙들었던 고민이에요. 감정이 증거가 아니거든요. 이건 조금 뒤에 더 이야기할게요.
양자됨이란 말을 풀어 보면
교회에서 가끔 양자됨(하나님의 아이로 입양되는 것)이라는 말을 써요. 어려워 보이지만 뜻은 아주 단순해요.
재판정을 떠올려 볼게요. 죄가 있던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무죄”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자, 그럼 이 사람은 이제 어디로 갈까요?
하나님은 무죄 선언만 하고 거리에 내보내지 않으세요. 집으로 데려가세요. 당신의 아들딸로 삼으시고, 이름을 올려 주시고, 상속자로 세워 주세요.
법정의 일이 “용서”라면, 이 집으로 데려가는 일이 “양자됨”이에요. 둘은 같은 날 일어나지만, 우리가 누리는 결은 달라요.
아빠, 아버지
로마서 8장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로마서 8:15
“다시”라는 말이 눈에 걸리지 않으세요? 옛날처럼 다시는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많은 새신자분들이 자녀가 되었는데도 종처럼 살더라고요. 매일 숨죽이고, 혼날까 봐 눈치 보고, 기도할 때도 주뼛거리고요. 저도 오래 그랬어요.
그런데 성경은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요. 이건 정말 놀라운 호칭이에요. 종은 절대 주인을 이렇게 부르지 못했거든요. 가장 가까운 사이, 무릎에 올라앉는 아이만 쓰던 말이에요.
감정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아빠”라고 불러도 마음이 메말라 있을 때가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그게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일까요?
바로 다음 절이 이렇게 이어져요.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로마서 8:16
증언하는 분은 성령이에요. 내 감정이 아니에요.
내 마음이 오늘 메말랐어도, 성령께서 내 영 속에서 조용히 말씀하고 계세요. “너는 그분의 것이야.” 이 확신은 감정의 크기로 오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스며들어요.
가장 따뜻한 한 구절
마지막으로 이 구절을 마음에 품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 요한일서 3:1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만 해도 놀라운데, 그 뒤에 “우리가 그러하도다”가 붙어요. 이름만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는 뜻이에요.
오늘 당신의 성적표가 어떻든, 기도가 잘되든 안 되든, 교회에 오래 다녔든 이번 주가 처음이든 —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당신은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예요. 빌려온 이름이 아니라 진짜 호적이에요.
오늘의 작은 초대
오늘 밤 자기 전에 이 한 문장만 조용히 말씀드려 보실래요?
“아빠, 저 왔어요.”
잘 모르겠는 마음 그대로 괜찮아요. 멋진 기도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 한 마디를 들으시는 분이 이미 당신의 아버지이신 걸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어떤 모습이든 아버지의 아이라는 사실이 오늘은 잘 믿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 이름으로 조용히 부르며 잠들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품은 늘 열려 있다는 걸 믿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