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를 먹으면 정말 죄인가 — 구약 음식 규정과 복음의 자유

돼지고기를 먹으면 정말 죄인가 — 구약 음식 규정과 복음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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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을 꺼내기가 민망했다

“목사님, 돼지고기 먹으면 죄인가요?”

어느 성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질문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건강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성경을 펼쳐 레위기를 읽어 주었다.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라고. 하나님이 직접 금지하셨다고. 성경 말씀이니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세미나는 안식일 강제와 음식 규정을 구원과 연결하는 한 종파의 입구였다.

이 질문은 우습게 넘길 일이 아니다. 레위기 11장은 분명히 성경에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맞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돼지고기를 먹는가? 성경의 일부를 무시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려면, 성경 전체의 흐름 — 곧 구속사(救贖史)의 논리 — 을 따라가야 한다.

율법에는 종류가 있다

구약의 율법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율법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도덕법(십계명 등 영구적 윤리 원칙), 시민법(이스라엘 국가의 사법 체계), 그리고 의식법(제사·정결·음식 등 예배 규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 3항은 이렇게 정리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 3항의 요지는 이렇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의식법은 여러 전형적 예식을 담고 있었다. 이 모든 의식법은 지금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 3항 (요지)

레위기 11장의 음식 규정은 의식법에 속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주변 민족과 구별하는 경계 표지(boundary marker)였고, 동시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룩함을 예표(豫表)하는 그림자였다. 도덕법은 영원하다 — “살인하지 말라”는 오늘도 유효하다. 그러나 의식법은 그것이 가리키던 실체가 오면 그 역할을 다한다. 그림자는 실체 앞에서 존재 이유를 잃는다.

예수님이 직접 선언하셨다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정결 전통을 정면으로 뒤집으신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 마가복음 7:14-19

마지막 문장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는 마가의 편집 주석(editorial comment)이다. 마가는 독자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 예수님의 이 선언은 단순한 위생 교훈이 아니라, 모든 음식의 정결 선언이라고. 더럽히는 것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이신다. 보자기 안에 부정한 동물들이 담겨 있었고,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렸다.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시거늘.” — 사도행전 10:13-15

이 환상의 직접적 적용은 이방인 고넬료를 향한 복음 전파였다. 그러나 환상에서 일어난 일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 하나님은 부정한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다.” 음식 규정이 수행하던 기능, 곧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의 분리 장벽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너진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선언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에베소서 2:14

그림자와 실체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이 원리를 더욱 명확하게 적용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골로새서 2:16-17

음식 규정, 절기, 안식일 — 이 모든 것은 “장래 일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실체를 가리킨다. 실체가 도착하면 그림자를 붙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가 그 실체다. 그림자를 고집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라, 실체를 놓치는 비극이다.

”귀신의 가르침”이라는 경고

바울은 더 나아가 음식을 금하는 가르침에 대해 놀라울 만큼 강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금하라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디모데전서 4:1-5

“귀신의 가르침”이라는 표현이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비판하는 핵심을 정확히 봐야 한다. 문제는 건강을 위해 특정 음식을 절제하는 개인적 선택이 아니다. 문제는 음식 금지를 구원이나 성화의 조건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 이것이 바울의 결론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하나님이 금하셨다고 가르치는 것, 그것이 바로 바울이 경고하는 가르침의 구조다.

반론에 대하여: 노아도 구분하지 않았는가?

음식 규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창세기 7:2를 근거로 든다. 노아의 방주에 정결한 동물 일곱 쌍, 부정한 동물 한 쌍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보다 앞선 창조 질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창세기 8:20을 읽으면 그 구분의 목적이 드러난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 창세기 8:20

정결한 동물이 더 많이 들어간 이유는 번제를 위해서였다 — 식이(食餌) 규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노아 시대의 정결/부정 구분을 레위기의 음식 금지 체계와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이 지지하지 않는 비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 문제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은 음식이 아니다. 의(義)와 평강과 희락이다. 이것은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식단표를 따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된 성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내적 변화이지, 외적 규정의 준수가 아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고린도후서 3:18

성화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바라보느냐가 관건이다.

자유 안에 서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것을 다시 미완성으로 돌리는 모든 시도 — 음식 금지든, 안식일 강제든, 준경전적 예언서의 권위를 덧붙이는 것이든 — 는 종의 멍에를 다시 메는 것이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요한복음 19:30

음식 규정을 다시 부과하는 것은 이 선언에 “하지만 아직 이것은 남았다”라는 단서를 다는 것과 같다.

건강을 위해 특정 음식을 절제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구원이나 성화의 조건으로 가르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義)이시고, 그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서 8:1

돼지고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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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