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합니다. 이 글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작성됐으며, 개혁주의적 견해는 글 하단 ‘개혁주의의 견해’ 섹션에 별도 표기합니다.
”장로교”라는 이름의 뜻
한국에서 “교회 다녀요”라고 하면, 높은 확률로 그 교회는 장로교다. 한국 개신교 신자의 약 **60%**가 장로교 소속이고, 교단 수는 100개를 넘는다. 장로교는 단순한 한국적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명의 신자를 가진, 개혁주의(Reformed) 전통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교파다.
그런데 이름부터가 낯설다. 천주교는 교황(敎皇)이 다스리고, 감리교는 감독(監督)이 다스리고, 침례교는 회중(會衆)이 다스린다면, 장로교는 누가 다스리는가. 글자 그대로 장로(長老)다. 더 정확히는 “장로들의 회(會) — presbuteros 의 복수형 회의”다. 그리스어 프레스뷔테리온(presbyterion, 장로회)에서 온 이름이다.
장로교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세 도시를 지나야 한다 — 제네바 (1541), 에든버러 (1560), 런던 웨스트민스터 (1647).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평양 (1907)에 도착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어떻게 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세계 최대의 장로교 공동체를 낳았는가. 이 글은 그 400년 여정의 안내도다.
타임라인 — 장로교의 주요 사건
| 연도 | 사건 |
|---|---|
| 1536 | 칼뱅, 초판 『기독교 강요』 출간 —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기초 |
| 1541 | 칼뱅, 제네바에서 『교회 법령』 제정 — 4직분(목사·교사·장로·집사) 확립 |
| 1560 | 스코틀랜드 의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제1치리서 채택 — 녹스 주도 |
| 1572 | 존 녹스 사망 |
| 1638 | 스코틀랜드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 체결 |
| 1643 | 잉글랜드 장기의회, 웨스트민스터 총회 소집 |
| 1647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대소요리문답·교회 정치 형태 완성 |
| 1729 | 미국 필라델피아 대회, “채택 법령”으로 웨스트민스터 표준 수용 |
| 1788 | 미국 장로교 총회 조직 |
| 1884 | 알렌, 제물포 상륙 — 한국 개신교 최초 의료선교사 |
| 1885 | 언더우드, 서울 입경 — 한국 장로교 선교 공식 시작 |
| 1907 | 평양 장로회신학교 첫 졸업,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창립, 평양대부흥 |
| 1953 | 한국 장로교 1차 분열 — 기장 분립 |
| 1959 | 한국 장로교 2차 분열 — 합동·통합 분리 |
제네바 — 장로교의 모체
제네바 성 피에르 대성당(Cathédrale Saint-Pierre) 내부. 칼뱅이 1541년부터 1564년 사망 시까지 주일마다 이곳 강단에서 설교했다. 장식을 걷어 낸 흰 벽과 단순한 강대상이 개혁주의 예배 공간의 원형을 이룬다. 출처: BriYYZ from Toronto,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자신의 이름을 딴 교회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피카르디 출신의 변호사·인문주의자였고, 1536년 종교적 박해를 피해 바젤로 가던 길에 제네바에 하룻밤 머물렀다가 기욤 파렐의 강권에 붙잡혀 그 도시에 눌러앉았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1541년, 몇 년간의 추방과 귀환 끝에 칼뱅은 『교회 법령(Ordonnances ecclésiastiques)』을 제네바 시의회에 제출한다. 이 짧은 문서가 장로교 정치의 헌장(憲章)이다. 여기서 칼뱅은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교회 직분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 목사(pasteur) — 말씀과 성례를 맡은 자
- 교사(docteur) — 성경 해석과 교리 교육을 맡은 자
- 장로(ancien) — 치리(治理)와 권징을 맡은 평신도 지도자
- 집사(diacre) — 빈민 구제와 재정을 맡은 자
칼뱅의 독창성은 “장로”의 직분을 평신도에게 회복한 데 있다. 중세 로마는 성직자 계급(clergy)과 평신도(laity)를 엄격히 분리했고, 교회 치리권은 오직 사제와 주교에게만 있었다. 그러나 칼뱅은 디모데전서 5:17에서 명백한 구분을 발견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 디모데전서 5:17
이 구절에서 칼뱅은 장로 직분이 두 종류임을 읽어 냈다. 말씀을 맡은 장로(teaching elder — 오늘의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ruling elder — 오늘의 평신도 장로)다. 교회는 이 두 부류 장로가 함께 다스리되 어느 한쪽도 단독으로 군림할 수 없다.
매 목요일, 제네바 교회는 콘시스토리(Consistoire)를 열었다. 목사들과 장로들이 함께 앉아 교인의 신앙과 생활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권징을 시행했다. 이 주간 당회가 훗날 장로교 3심 구조의 원형이다 — 개교회의 당회(session), 지역의 노회(presbytery), 전국의 총회(general assembly). 권세는 아래에서 위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받아 각 단위의 회(會)가 협의체로 행사한다.
칼뱅 자신은 평생 “주교”도 “대주교”도 아니었다. 그는 제네바 교회의 한 목사였고, 매주 설교했으며, 제네바 시의회와 18년간 충돌했다. 1559년 『기독교 강요』 최종판 4권 3장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교회에는 오직 한 머리, 그리스도가 계실 뿐이며, 모든 직분자는 그분의 종으로서 서로 동등하다.
스코틀랜드 — 장로교가 한 나라의 교회가 되다
칼뱅의 제네바가 도시 하나의 실험이었다면, 스코틀랜드는 장로교가 국가 단위로 확장된 첫 사례다. 그 결정적 인물이 존 녹스(John Knox, 1514~1572)다.
존 녹스(1514~1572).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지도자, 장로교 정치 체제의 설계자. 테오도르 베자의 종교개혁자 초상집 Icones(1580) 수록.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녹스의 생애 자체가 장로교의 거친 탄생 서사다. 1547년 그는 세인트앤드류스 성에서 프랑스 함대에 포로가 되어 19개월간 갤리선에서 노예 노를 저었다. 석방 후 영국·제네바를 오가다 1555년 제네바에 정착하여 칼뱅에게 직접 배웠다. 그는 제네바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도 시대 이래 땅 위에 존재한 그리스도의 가장 완전한 학교.”
1559년 녹스는 스코틀랜드로 귀국한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고, 여왕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는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녹스는 에든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성당(St Giles’ Cathedral)에서 폭발적인 설교를 이어 갔고, 여왕과 다섯 차례 정면 대면하여 논쟁했다.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 12세기에 처음 세워졌으며, 16세기 종교개혁기 존 녹스가 이곳을 강단 삼아 스코틀랜드 전역의 개혁을 이끌었다. 녹스의 묘는 성당 옆 광장 아래에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1560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두 개의 결정적 문서를 채택한다.
- 스코틀랜드 신앙고백(Scots Confession, 1560) — 칼뱅주의 신학의 스코틀랜드판 표준
- 제1치리서(First Book of Discipline, 1560) — 장로정치를 국가 교회 제도로 확립
이로써 스코틀랜드는 장로교를 국교(國敎)로 선언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국교회(Church of Scotland)는 오늘날까지도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교이며, 그 치리 형태는 녹스 시대에 정립된 그대로다.
1638년, 스코틀랜드 신자들은 에든버러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 묘지에 모여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에 서명한다. 잉글랜드 왕 찰스 1세가 성공회 전례서를 스코틀랜드 교회에 강요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여 “그리스도 외 어떤 왕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Christ alone is King in His Kirk)“라는 신앙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후 수십 년간 박해를 받은 언약도(Covenanters)는 장로교의 DNA에 “교회의 독립”이라는 유전자를 새겨 넣었다.
웨스트민스터 — 장로교 신앙고백의 완성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독립파 신학자들의 양심의 자유 주장, 1644” — 존 로저스 허버트(John Rogers Herbert) 작, 1847. 의회 소집으로 열린 이 총회는 121명의 신학자와 30명의 의원이 5년 반에 걸쳐 1,163회 이상 모여 장로교 표준 문서 네 가지를 완성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장로교의 교리적 정점은 잉글랜드에서 왔다. 1643년 잉글랜드는 내전 중이었다. 장기의회(Long Parliament)는 찰스 1세와 왕당파에 맞서 스코틀랜드의 군사 지원이 필요했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교회를 장로교로 개혁한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정치·신학적 협약이 엄숙 동맹(Solemn League and Covenant, 1643)이며, 그 실행 기구가 웨스트민스터 총회(Westminster Assembly)였다.
1643년 7월 1일, 121명의 신학자와 30명의 의원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의 헨리 7세 예배당에 모였다. 이들은 5년 반에 걸쳐 1,163회 이상 회의를 열었고, 네 개의 문서를 완성했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 33장 조직신학 요약
- 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 — 196문답, 성인 교육용
-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 107문답, 어린이·입교자용
- 예배 모범·교회 정치 형태 — 예배와 교회 치리의 지침
이 네 문서는 오늘까지 전 세계 장로교의 공통 표준이다. 스코틀랜드 총회가 1647년 즉시 채택했고, 미국 필라델피아 대회가 1729년 “채택 법령”(Adopting Act)으로 수용했으며, 한국 장로교도 1907년 독노회 창립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식 표준으로 선언했다.
웨스트민스터의 세 가지 공헌은 다음과 같다.
1. 언약신학의 조직화
신앙고백 7장은 “하나님이 사람과 세우신 언약”을 다룬다. 창조 시 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covenant of works)과 타락 후 그리스도 안에서 맺으신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을 구분한다. 이 구분은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창조와 구속을 하나의 일관된 구조로 묶어 낸다. 17세기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금자탑으로 평가받는다.
2. 성경의 자증적 권위
신앙고백 1장 4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 한 문장으로 웨스트민스터는 세 방향의 도전을 동시에 막아 낸다. 로마의 교도권(교회가 성경을 권위 있게 만든다), 재세례파의 내적 조명(개인 영감이 성경과 동등하다), 소시누스의 이성주의(이성이 성경을 판단한다) — 모두에 대한 답이다.
3. 예정과 섭리의 균형
3장은 예정을, 5장은 섭리를 다룬다. 그러나 결정론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반드시 “제2원인”(second causes)의 실재를 명시한다. 3장 1절 —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신의 뜻의 가장 지혜로운 계획에 따라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자유롭고 불변하게 작정하셨으되, 이로써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시는 것도 아니며, 피조물의 의지에 강요를 가하시는 것도 아니며, 제2원인의 자유나 우연성이 제거되는 것도 아니라, 도리어 확립된다.” 이것이 개혁주의의 섬세함이다.
한국 — 장로교 역사상 가장 거대한 확장

장로교의 지리적 중심은 오늘 유럽이 아니다. 한국이다. 한국은 전 세계 장로교 신자의 약 **12%**를 차지하며, 단일 국가로는 미국 다음으로 큰 장로교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1884년 9월 20일에 시작된다.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호레이스 알렌(Horace Allen)이 제물포에 상륙했다. 이듬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북장로회)가 아펜젤러(감리회)와 함께 제물포에 내렸다. 언더우드는 장로교 선교의 실질적 시작점이다. 그는 1887년 새문안교회를 설립했고, 『한영자전』을 편찬했으며, 1915년에는 연희전문학교(오늘의 연세대학교)를 세웠다.
네비우스 방법 — 한국 장로교의 DNA
1890년 중국 산둥의 선교사 존 네비우스(John Nevius)가 서울을 방문하여 한국 선교사들에게 결정적 원리를 제시했다. 이른바 3자 원칙이다.
- 자립(self-support) — 본토 교회가 스스로 재정을 감당한다
- 자전(self-propagation) — 본토 교회가 스스로 복음을 전파한다
- 자치(self-governance) — 본토 교회가 스스로 다스린다
이 방법론은 한국 교회를 선교사 의존형이 아닌 본토인 치리 장로교회로 키웠다. 1901년 최초의 한국인 장로 7명이 장립되었고, 190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 첫 졸업생 7명(길선주·방기창·서경조·송린서·양전백·이기풍·한석진)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같은 해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평양에서 창립됐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식 표준으로 선언했다.
1907년 평양대부흥
1907년은 한국 장로교 역사에서 이중의 해다. 제도적으로는 독노회 창립, 영적으로는 평양대부흥. 길선주 장로의 공개적이고 구체적인 회개를 시작으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촉발된 이 부흥은 전국으로 번졌고, 한국 장로교의 영적 양식을 형성했다 — 말씀 중심 설교, 새벽기도, 사경회(성경공부 집중 모임), 통성기도. 이 경건 양식은 오늘까지도 한국 장로교 예배 문화의 근간이다.
분열의 세 단계
한국 장로교는 성장의 역사이자 분열의 역사다. 세 차례의 큰 분열을 정리하면 이렇다.
| 연도 | 교단 분립 | 쟁점 |
|---|---|---|
| 1952 | 고신(예장 고신) 분립 | 신사참배 회개 문제 —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했던 목사들을 교회가 수용할 것인가 |
| 1953 |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분립 | 김재준의 성경관(고등비평 수용) 논쟁 |
| 1959 | 합동과 통합 분리 | WCC 가입 여부, 에큐메니컬 운동 수용 여부 |
오늘 한국의 주요 장로교단은 예장 합동·예장 통합·예장 고신·기장·예장 백석대신·예장 합신 등이며, 모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식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성경관, WCC 관계, 여성 안수 여부, 사회 참여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장로교 정치의 핵심 원리 — 당회·노회·총회
장로교를 다른 교파와 가장 뚜렷이 구분하는 것은 치리 구조다. 3심 구조로 요약된다.
| 단위 | 구성 | 역할 |
|---|---|---|
| 당회(session) | 개교회의 담임목사 + 시무장로 | 교인 등록·권징·성례 집행 감독 |
| 노회(presbytery) | 지역 내 목사 + 각 교회에서 파송한 장로 | 목사 안수·이명·치리, 교회 설립·해산 |
| 총회(general assembly) | 전국의 노회에서 파송한 총대(목사·장로) | 신학 표준 수호, 교단 전체 지침 결정 |
이 구조의 정신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권세의 분점(分點).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기관도 교회의 절대 권세를 갖지 않는다. 목사 위에 감독이 없고, 감독 위에 교황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다.
둘째, 회(會)의 치리. 모든 결정은 개인이 아닌 회의체에서 협의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 전체에게 매고 푸는 권세를 주신 것(마 18:18)의 성경적 실행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마태복음 18:18
셋째, 상소의 가능성. 개교회의 결정은 노회에, 노회의 결정은 총회에 상소할 수 있다. 이는 약자를 보호하고 독주를 막는 안전장치다.
오해와 진실 — 자주 묻는 질문
Q1. “장로교”와 “개혁주의”는 같은 말인가?
거의 같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개혁주의(Reformed)는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는 모든 교회의 총칭이며, 장로정치 외에 회중주의(네덜란드 개혁교회 일부), 독립파 등을 포함한다. 장로교(Presbyterian)는 개혁주의 신학을 믿으면서 장로정치(당회·노회·총회 3심 구조)를 따르는 교회를 특정한다. “개혁주의 ⊃ 장로교”의 관계다.
Q2. 목사와 장로의 차이는 무엇인가?
장로교는 “모든 장로는 장로다”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두 종류가 있다.
- 말씀 장로(teaching elder) = 목사 — 말씀 선포와 성례 집행을 맡음
- 다스리는 장로(ruling elder) = 평신도 장로 — 치리와 권징에 참여
당회에서 두 장로는 동등한 결정권을 가진다. 한국 교회에서 목사와 평신도 장로의 관계가 종종 상하 관계로 오해되지만, 장로교 헌법상 두 장로는 직무의 구분이지 계급의 구분이 아니다.
Q3. 장로교는 왜 이렇게 많이 갈라졌는가?
장로교의 분열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신학적 엄밀성에 대한 집착 — 교리적 차이를 타협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분열을 낳기도 한다. 둘째, 총회의 치리권이 강해서 신학 노선이 갈리면 교단 자체가 갈라지는 구조다. 감독제 교회(감리교·성공회)는 감독의 중재로 내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쉽지만, 장로교는 총회 결정이 곧 교단 전체의 신학이 되기 때문이다.
Q4. 장로교 예배는 왜 단순한가?
칼뱅은 규정 원리(regulative principle)를 주장했다. 예배에서 성경이 명하지 않은 요소는 배제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리가 장로교 예배를 단순화했다 — 설교 중심, 찬송, 기도, 성례(세례·성찬), 성경 봉독. 장식적 전례, 향, 이콘, 화려한 예복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제네바 성 피에르 대성당의 흰 벽과 빈 공간이 그 예배 공간의 원형이다.
현재는 어디에 있나 — 장로교의 세계 지형
2025년 현재 전 세계 장로교·개혁교회 신자는 약 7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주요 분포는 다음과 같다.
- 한국 — 약 900만 명 (세계 최대 밀집도)
- 미국 —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보수) + PCUSA(진보) 등 약 400만 명
- 아프리카 — 말라위·가나·남아공 등에서 빠르게 성장 중 (남아공 더치 개혁교회 포함 약 2천만 명)
- 스코틀랜드 — Church of Scotland, 국교로 유지되나 신자 수는 감소 추세
- 기타 — 네덜란드, 헝가리, 인도네시아, 대만 등
장로교는 교단 자체의 크기보다도 신학 교육 기관·출판·선교를 통한 영향력이 큰 전통이다. 프린스턴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총신대·합동신학대·장로회신학대 등이 세계 복음주의 신학의 주요 산실이다.
개혁주의의 견해
이 블로그는 개혁주의를 표방한다. 장로교는 개혁주의 신학이 제도로 구현된 형태이므로, 우리는 장로교의 기본 틀을 성경적이라고 받아들인다. 다만 제도가 절대화될 때의 위험을 함께 지적하고자 한다.
1. 장로정치는 성경적이되, 구원의 본질은 아니다.
칼뱅이 『기독교 강요』 4권에서 분명히 했듯, 교회 정치는 교회의 본질(essentia)이 아니라 좋은 상태(bene esse)에 속한다. 장로정치가 아니어도 참 교회는 존재할 수 있다. 감리교·침례교·성공회도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정당히 시행되는 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장로교의 교만은 여기서 경계해야 한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여전히 우리의 표준이다.
380년이 지났지만 웨스트민스터는 조직신학적 정밀성에서 개혁주의 최고의 요약이다. 한국 장로교가 이 고백의 언약신학·성경론·예정론을 다시 진지하게 가르친다면, 한국 교회의 많은 혼란 — 번영복음, 신비주의, 감정주의, 이단에 대한 취약성 — 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장로교회가 신앙고백을 이름만 표준으로 두고 실제로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3. 당회의 살아 있음이 장로교의 생명이다.
장로교의 영광은 당회(session)에 있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아니라 목사와 장로들이 공적으로 의논하고, 공적으로 결정하고, 공적으로 책임지는 구조 — 이것이 성경적 목회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대형 교회에서 당회는 담임목사의 거수기로 전락했고, 중소 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목사를 압박하는 권력 집단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장로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4.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의 표어였던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장로교의 자기 비판 원리다. 제도·교단·신학 표준 모두가 말씀 아래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한국 장로교가 100년간 이룬 것은 놀랍다. 그러나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제도의 자기반성과 회개, 말씀으로의 재정렬이 필요한 시간이다.
5.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왕이시다.
스코틀랜드 언약도가 목숨을 걸고 선언한 고백이 오늘도 장로교의 심장이다. 어떤 교황, 어떤 감독, 어떤 총회장, 어떤 담임목사도 교회의 머리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왕이시고, 모든 직분자는 그분의 종이다. 이 고백을 잃는 순간 장로교는 껍데기만 남는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사도행전 20:28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남긴 이 말씀이 장로교 직분의 알파와 오메가다. 장로는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 자다. 이 무게 앞에서 장로교의 400년은 비로소 겸손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