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뿌리를 찾아서 A1: 첫 교회는 어떻게 시작됐나

교회의 뿌리를 찾아서 A1: 첫 교회는 어떻게 시작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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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합니다. 이 글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작성됐으며, 개혁주의적 견해는 글 하단 ‘개혁주의의 견해’ 섹션에 별도 표기합니다.

12명이 세상을 바꿨다고?

전 세계에 약 25억 명의 기독교인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종교다. 유럽,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한국까지 — 이 종교가 닿지 않은 대륙이 없다.

그런데 이 거대한 흐름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놀라울 만큼 초라한 장면과 마주한다. 로마 제국 변방의 작은 속주, 팔레스타인. 지도자는 십자가에 처형당했고, 남은 추종자는 고작 120명 남짓. 그들에게는 군대도, 자본도, 정치적 영향력도 없었다.

이 글은 그 120명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일이 어떻게 로마 제국 전체를 뒤흔드는 운동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예수가 떠난 뒤 — 빈 자리, 빈 사람들

기독교의 배경을 간단히 짚자. 예수(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 부른다)는 약 서기 30년경, 3년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며 활동했다. 그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고, 제자들은 그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했다. 이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부활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한 예수는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신학 용어로 이것을 ‘승천’이라 부른다. 떠나기 직전,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사도행전 1:8

“성령”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 예수는 자기가 떠난 뒤 이 성령이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제자들은 이 약속을 붙잡고 예루살렘에서 기다렸다. 약 120명이 한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다.


오순절 — 교회가 태어난 날

승천 후 열흘째 되는 날, 유대인의 절기인 ‘오순절(칠칠절)‘이 왔다. 오순절은 보리 추수를 감사하는 농경 축제로, 예루살렘에는 로마 제국 각지에서 유대인들이 몰려와 있었다. 바로 이날, 기다리던 일이 터졌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사도행전 2:1-4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갈릴리 출신 어부들이 갑자기 배운 적 없는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이집트, 로마에서 온 유대인들이 각각 자기 모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놀랐고, 어떤 이들은 “새 술에 취한 것”이라 비웃었다.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 연설했다. 이 어부 출신의 제자는 불과 50일 전만 해도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수천 명 앞에 서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성경의 예언 성취라고 선포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하니라.” — 사도행전 2:36

이 연설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대답했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날 약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한다.

기독교는 이 날을 교회의 생일로 여긴다.


초대 공동체 —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 형성된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사도행전 2:42, 44-47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첫째, 가르침과 기도. 이 공동체는 사도들(예수의 직접 제자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모였다. 독자적인 새 철학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가 가르친 것을 전달받아 붙잡았다.

둘째, 나눔의 경제.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다”는 기록은, 이것이 국가 주도의 제도가 아니라 자발적인 공동체 안의 행위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로마 제국의 계급 사회 한가운데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한 식탁에서 떡을 나누었다.

셋째, 기쁨. 박해와 가난 속에서도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살았다는 묘사는 외부 관찰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세기의 호교론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이교도들이 기독교인을 보며 한 말을 이렇게 전한다. “보라, 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이 공동체는 아직 ‘교회’라는 건물을 갖지 못했다. 성전 뜰에서 모이거나, 개인의 집에서 모였다.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 자체가 건물이 아니라 “불려 나온 사람들의 모임”을 뜻했다.

선한 목자 프레스코 —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 3세기 후반. 초대교회 미술의 가장 오래된 예 중 하나. **선한 목자 프레스코 (3세기 후반,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 교회 건물이 없던 시대, 지하 묘지 벽에 그려진 이 그림이 초대 기독교인의 신앙을 보여준다. 출처: Joseph Wilpert, Die Malereien der Katakomben Roms (190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바울과 선교 — 복음이 세계로 퍼지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공동체에 머물렀다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았을 것이다. 이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꾼 인물이 바울(사울)이다.

바울은 원래 기독교의 박해자였다. 바리새파(유대교의 엄격한 율법 준수 집단) 출신으로, 기독교인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시리아)로 가던 중 극적인 회심을 경험했다고 사도행전은 전한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사도행전 9:3-5

박해자가 전도자로 바뀌었다. 바울은 이후 약 30년간 세 차례의 대규모 선교 여행을 감행했고, 마지막에는 로마까지 도달했다. 그가 걸어간 거리는 총 16,000km 이상으로 추정된다. 비행기는커녕 포장도로도 드문 시대였다.

바울의 선교 여행 주요 경로

여행시기 (추정)주요 경유지핵심 사건
1차서기 46-48년안디옥 → 키프로스 → 소아시아 남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이방인(유대인이 아닌 사람) 선교의 시작
2차서기 49-52년안디옥 → 소아시아 → 유럽 진입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복음이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다
3차서기 53-58년안디옥 → 에베소(3년 체류) → 마게도냐 → 고린도 → 예루살렘에베소 교회 설립, 주요 서신 집필
로마행서기 60-61년가이사랴 → 지중해 항해 → 폭풍·난파 → 몰타 → 로마수감 중에도 복음 전파

바울의 선교 여행 경로 — 1차(황색), 2차(금색), 3차(적색), 로마행(청색)

에베소 셀수스 도서관 유적 — 바울이 3년간 머물며 교회를 세운 에베소의 상징적 건축물. 에베소 셀수스 도서관 유적.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중 3년간 체류한 도시다. 사진: Ad Meskens,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바울의 선교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먼 거리를 여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공동체를 세웠다는 점이다. 바울은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유대인 회당에서 가르치다가, 이방인(비유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새로 믿는 사람들이 생기면 장로(지도자)를 세우고, 그 공동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한 뒤 다음 도시로 떠났다.

떠난 뒤에도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바울은 편지를 썼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이 바울이 이 교회들에 보낸 편지다. 교리를 정리하고, 분쟁을 중재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꾸짖었다. 이 편지들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 세계 교회에서 읽히고 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오늘 우리에게 남긴 것

기독교의 첫 세대가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첫째, 기독교는 권력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의 지원도, 군사력도, 대규모 자본도 없었다. 오히려 유대 당국과 로마 권력 양쪽에서 탄압을 받았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참수당했다. 그런데도 이 운동은 커졌다.

둘째, 경계를 넘었다. 유대교에서 태어난 이 신앙은 유대인의 울타리를 넘어 그리스인, 로마인, 소아시아인에게 전해졌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갈라디아서 3:28

인종, 계급, 성별로 사람을 나누던 고대 세계에서 이 선언은 혁명적이었다.

셋째, 가르침이 문서로 남았다. 바울의 서신, 복음서, 사도행전 — 이 문서들이 나중에 ‘신약성경’으로 모아진다. 초대교회는 구전이 아닌 기록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신앙을 전달했고, 이것이 2,000년간 기독교가 핵심 메시지를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놀라운 성장의 시대 뒤에는 거대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곧 이 작은 종파를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네로 황제의 불길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개혁주의의 견해

개혁주의 신학은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읽을 때 몇 가지 강조점을 둔다.

성령의 주권적 역사. 오순절 사건은 인간의 계획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은 “효과적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별한 은혜에 의한 것”이라 고백한다. 3,000명이 한날에 회심한 것은 베드로의 웅변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마음을 여셨기 때문이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초대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이 곧 완벽한 교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교회 안에도 위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칼뱅은 ‘보이는 교회’(지상의 제도적 교회) 안에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섞여 있으며, ‘보이지 않는 교회’(하나님만 아시는 참 신자의 총체)와 구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말씀 중심의 교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는 사도행전 2:42의 표현은 개혁주의가 강조하는 ‘말씀의 사역’의 원형이다. 교회는 체험, 기적, 감정이 아니라 사도적 가르침 — 곧 성경 — 위에 세워진다. 이 원칙이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재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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