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뿌리를 찾아서 A0: 고대근동의 신들 사이에서 — 유대교는 왜 달랐는가

교회의 뿌리를 찾아서 A0: 고대근동의 신들 사이에서 — 유대교는 왜 달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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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합니다. 이 글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작성됐으며, 개혁주의적 견해는 글 하단 ‘개혁주의의 견해’ 섹션에 별도 표기합니다.

신이 수백 명이던 시대

기독교를 이해하려면, 그 뿌리인 유대교를 알아야 한다. 유대교를 이해하려면, 유대교가 태어난 세계를 봐야 한다. 그 세계는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근동 — 오늘날의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를 아우르는 지역 — 에서 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문제는 신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만 3,000개 이상의 신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에도 수백 명의 신이 있었고, 가나안 땅에도 바알, 아슈타롯, 몰렉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물리 법칙을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기이한 일이었다.

고대근동의 종교 세계와 이스라엘의 발자취 지도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우르·바벨론·니느웨), 나일 강 이집트(멤피스·테베), 그리고 그 사이 가나안 회랑(사마리아·예루살렘·시돈·두로). 점선은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닿은 아브라함의 길, 시내반도를 가로지른 출애굽의 행로, 그리고 사마리아·예루살렘이 니느웨와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의 길이다 — 다신교 제국들 사이를 가로지른 한 작은 언약 백성의 발자취.


신들의 세계 —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가나안

바알 석상 — 기원전 15세기 우가릿 출토, 번개를 든 폭풍의 신. 루브르 박물관 소장. 바알 석상 (기원전 15세기, 우가릿 출토).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Mbzt, Wikimedia Commons, CC BY 3.0

고대근동의 종교들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아 있었다. 공통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특징메소포타미아이집트가나안
대표 신마르둑, 엔릴, 이슈타르라, 오시리스, 이시스바알, 아슈타롯, 몰렉
신의 성격자연의 힘을 인격화 (폭풍, 강, 대지)태양·나일강·죽음을 관장비·풍요·전쟁의 신
신과 인간의 관계인간은 신의 노동력 (노예)파라오가 신의 화신제의를 통한 거래
핵심 제의신년 축제(아키투), 점술사후 세계 의식, 미라풍요 제의, 신전 매춘
극단적 관행왕의 장례에 수행원 순장몰렉에게 자녀를 불에 태움

몇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이 눈에 띈다.

첫째, 다신론. 신들은 하나의 위계 안에서 서로 경쟁하고, 싸우고, 질투했다. 바빌론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은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를 죽이고 그 시체로 세상을 만든다. 신들의 세계는 인간 권력 다툼의 투영이었다.

둘째, 자연 종교. 신들은 곧 자연이었다. 바알은 비, 아슈타롯은 풍요, 라는 태양이었다. 비가 내리면 바알이 기뻐한 것이고, 가뭄이 들면 바알이 죽은 것이었다. 신은 자연 현상 그 자체였지, 자연을 초월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셋째, 거래적 관계. “내가 제물을 바치면, 신이 비를 내려준다.” 고대근동의 종교는 본질적으로 거래였다. 충분한 제물을 바치지 못하면 신은 진노했고, 가장 값비싼 제물은 자녀였다. 가나안의 몰렉 숭배는 아이를 불에 태워 바치는 인신제사를 포함했다.


이스라엘의 혁명 — “들으라, 야훼는 하나”

이 세계 한복판에, 작은 민족이 있었다. 이스라엘. 그들이 선포한 신앙은 주변 모든 문명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신명기 6:4-5

이 선언(‘쉐마’)은 이스라엘 신앙의 심장이다. 무엇이 그토록 달랐는가?

유일신론. 신이 하나라는 주장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세계관 전체를 뒤집는 선언이었다. 비가 바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야훼가 비를 내리시는 것이다. 풍요가 아슈타롯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영역이 한 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 고대근동에서 신은 자연의 일부였다. 그러나 야훼는 자연을 만든 분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세기 1:1

이 한 문장이 고대근동의 모든 창조 신화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에누마 엘리쉬에서 세상은 신들의 전쟁 부산물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의도적 설계다. 하나님은 자연 안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자연 너머에 계신 분이었다.

도덕적 하나님. 바알은 도덕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물만 받으면 됐다. 그러나 야훼는 달랐다. 야훼는 정의와 긍휼을 요구하셨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미가 6:8

제물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이 문제였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종교적 요구였다.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는 인격적 하나님. 마르둑은 매년 반복되는 자연 순환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야훼는 역사 안에서 일하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야훼 신앙은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방향이 있는 역사를 전제했다.


충돌의 현장 — 이스라엘은 왜 흔들렸는가

이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은 명확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 주변 종교에 끊임없이 흔들렸음을 숨기지 않는다.

금송아지 사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있는 동안, 산 아래에서 백성은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경배했다. 이집트에서 막 나온 지 몇 달 만의 일이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 출애굽기 32:1

눈에 보이는 신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사기 시대의 혼합주의.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세대가 바뀌면서 야훼 신앙과 바알 숭배를 뒤섞기 시작했다. 사사기는 이 반복 패턴을 이렇게 요약한다.

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 사사기 2:11-12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 결정적 대결. 가장 극적인 충돌은 열왕기상 18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이세벨 왕비의 영향 아래 바알 숭배를 공식화한 시대,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에게 정면 도전한다. 갈멜산에서 각각 제단을 쌓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시험이었다.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 열왕기상 18:24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부짖으며 칼로 몸을 그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과 제단과 물까지 살랐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자연 종교와 유일신 신앙 사이의 근본적 대결이었다. 바알은 비의 신이라 불렸지만, 하늘에서 불을 내릴 수 없었다. 자연의 힘에 불과한 신과,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차이가 갈멜산에서 드러난 것이다.


왜 고대근동의 신들은 사라지고, 야훼 신앙은 남았는가

바빌론이 멸망하자 마르둑도 사라졌다. 이집트 왕조가 끝나자 라와 오시리스도 잊혔다. 가나안 문명이 쇠퇴하자 바알도 함께 사라졌다. 고대근동의 신들은 그 신을 섬기던 문명과 운명을 같이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달랐다. 나라가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는데도 야훼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포로기를 거치면서 더 선명해졌다.

왜 그랬을까?

첫째, 야훼는 땅에 묶이지 않았다. 마르둑은 바빌론의 신이었고, 바알은 가나안의 신이었다. 그 땅을 떠나면 신도 떠났다. 그러나 야훼는 특정 땅이나 성전에 묶인 분이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도 하나님은 계셨다. 바빌론 포로지에서 선지자들은 오히려 야훼의 주권이 온 세계에 미친다고 더 강하게 선포했다.

둘째, 기록된 텍스트. 고대근동의 종교 전통은 주로 사제 계급의 구전과 의식에 의존했다. 사제가 사라지면 종교도 끊겼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토라(모세오경)를 중심으로 한 문서 전통을 발전시켰다. 포로기 이후 회당(시나고그)이 생겨나면서, 성전 없이도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공동체가 유지되었다.

셋째, 고통을 해석하는 틀. 나라가 망했을 때, 다른 문명은 “우리 신이 졌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바빌론이 이긴 것이 아니라, 야훼가 심판 도구로 바빌론을 쓰신 것이다.” 고통조차 야훼의 주권 아래 있었다. 이 해석은 패배를 신앙의 종말이 아니라, 신앙의 심화로 전환시켰다.


한 분 하나님에서 한 분 그리스도로

기원전 6세기 포로 귀환 이후, 유대교는 더욱 정제된 유일신 신앙과 율법 중심의 삶으로 자리를 잡았다. 회당이 세워지고, 율법이 연구되었으며, 메시아 —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 — 에 대한 기대가 깊어졌다.

선지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이사야 9:6

수백 년간 이스라엘은 이 약속을 품고 기다렸다. 바빌론 제국이 페르시아에 넘어가고,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그리스가 로마에 흡수되는 동안에도, 유대인들은 한 분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실 한 분 구원자를 기다렸다.

그리고 서기 1세기, 로마 제국 변방의 작은 속주 팔레스타인에서, 한 목수의 아들이 입을 열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3,000년에 걸친 유일신 신앙의 역사는, 이 한 사람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일으켰는지 — 그것이 다음 편의 이야기다.


개혁주의의 견해

개혁주의 신학은 고대근동의 종교사를 읽을 때 몇 가지 고유한 강조점을 둔다.

일반 은혜와 특별 계시의 구분. 칼뱅은 모든 인간에게 ‘신성의 감각(sensus divinitatis)‘이 심어져 있다고 가르쳤다 (기독교강요 1.3.1). 고대근동의 수많은 종교는 이 감각이 작동한 흔적이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초월적 존재를 찾는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 감각을 왜곡하여 피조물을 신으로 섬겼다. 바울의 진단이 이를 요약한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로마서 1:21-23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인간이 스스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결과다. 이것이 일반 은혜(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신성의 감각)와 특별 계시(아브라함·모세를 통한 직접적 자기 계시)의 차이다.

우상숭배의 본질.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5문은 제1계명이 금하는 죄를 열거하면서, 우상숭배의 핵심이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라 정의한다. 개혁주의는 이것을 단순히 고대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돈, 명예, 권력, 안전 — 현대인이 궁극적으로 의지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 고대근동의 바알이 사라졌지만, 우상숭배의 구조는 인간의 마음속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언약의 연속성.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창 12장), 시내산 언약(출 19-24장), 다윗 언약(삼하 7장)이 모두 하나의 은혜 언약의 전개라고 본다. 고대근동의 종주권 조약(suzerainty treaty) 형식을 빌렸지만, 내용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 히타이트 조약은 강자가 약자에게 복종을 강요한 것이지만, 야훼의 언약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베푸시고, 응답을 요청하시는 것이었다. 이 언약의 선이 구약 전체를 관통하여, 마침내 “새 언약”을 세우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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