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정말 그렇게만 말씀하셨느냐 — 왜 성경은 66권인가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만 말씀하셨느냐 — 왜 성경은 66권인가

#성경론#정경#변증#이단비판

가장 오래된 질문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질문은 철학자의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동산에서 나왔다.

하나님이 정말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경계를 흐렸다. “정말 그렇게만 말씀하셨느냐?” — 이 질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바깥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암시를 심는다. 말씀의 내용을 공격하기 전에, 말씀의 범위를 의심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놀라울 만큼 오래 살아남았다. 2세기 영지주의자들은 “숨겨진 복음서”를 들고 나왔다. 21세기에는 베스트셀러 소설과 유튜브 음모론이 “교회가 숨긴 성경”을 속삭인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비유 풀이를 독점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형식상 66권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창시자의 해석을 성경 위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66권 옆에 67번째 책을 슬쩍 끼워 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겉모습은 다양하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만 말씀하셨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답해야 한다. 왜 66권인가. 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66권인가.


예수님이 직접 그으신 선

정경의 경계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증거는, 놀랍게도 공의회 기록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다.

부활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누가복음 24:27

그리고 같은 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 누가복음 24:44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 이것은 히브리 정경의 세 부분 구조(토라, 네비임, 케투빔)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이다. 예수님은 히브리 정경 전체를 승인하신 것이며, 이것이 바로 개신교 구약 39권과 동일한 내용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긋는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마태복음 23:35

“아벨부터 사가랴까지” — 이것은 히브리 성경의 배열 순서에서 첫 번째 순교자(창세기의 아벨)부터 마지막 순교자(역대기의 사가랴)까지를 의미한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예수님은 히브리 정경 전체의 범위를 이 한 문장으로 확정하셨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증언한다. 그는 유대인이 권위를 인정하는 문서가 22권이라고 기록했는데, 이것은 분권 방식만 다를 뿐 개신교 구약 39권과 정확히 동일한 내용이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이 22권 밖의 문서들이 “동일한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구분했다.


외경이 스스로 고백하는 것

그렇다면 천주교 성경에 포함된 외경(제2경전)은 어떤가? 이 문서들이 정경에서 배제된 이유는 단순히 “개신교가 빼버린 것”이 아니다. 외경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고백한다.

마카비 1서 9장 27절은 이렇게 말한다:

“선지자들이 그들 가운데서 사라진 이후로는 이런 큰 고난이 이스라엘에 없었다.” (공동번역 참조)

외경 자체가 선지자의 부재를 인정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없는 시대에 기록된 문서가, 어떻게 선지적 권위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마카비 2서 15장 38절에서 저자는 이렇게 끝맺는다:

“이 이야기가 잘 꾸며졌다면 그것이 내가 원한 것이었고, 형편없고 평범하다면 그것이 내 능력의 한계였을 뿐이다.” (공동번역 참조)

이것을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비교해 보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디모데후서 3:16-17

정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선언한다. 외경의 저자는 “이것이 내 능력의 한계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두 음색의 차이는 어떤 학술적 논증보다 더 분명하다.

여기에 교리적 문제도 겹친다. 마카비 2서 12장 45절은 죽은 자를 위한 속죄 제사를 긍정하며, 토비트 12장 9절은 “자선이 죽음에서 건진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 전체의 증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가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킨 것은, 이 교리적 충돌 때문에 오히려 필요했다 — 연옥 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리가 먼저이고, 정경론이 뒤따른 것이다.


교회는 발명했는가, 인식했는가

여기서 결정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교회가 정경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인식했는가?

만약 교회가 정경을 만든 것이라면, 교회는 정경의 주인이다. 원하면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논리이며, “숨겨진 복음서”를 주장하는 모든 집단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신약 문서들은 공의회가 결정하기 수백 년 전부터 교회에서 권위 있는 문서로 읽히고 있었다. 카르타고 공의회(397년)는 정경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가 오래전부터 인식해온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농부가 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확하듯,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식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경 식별에 사용된 기준은 세 가지였다. 사도성 — 사도 또는 사도의 직접적 감독 하에 기록되었는가. 보편성 — 전체 교회가 널리 받아들였는가. 정통성 — 이미 인정된 계시의 진리와 일치하는가. 이 세 기준은 후대 학자들이 정리한 분류이지만, 그것이 반영하는 실질적 과정은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여 식별하게 하신 과정의 열매다.


닫힌 정경이라는 선물

히브리서 1장 1-2절은 정경이 왜 닫혀야 하는지를 선언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히브리서 1:1-2

하나님의 계시는 아들 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복음이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을 거쳐,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에서 성취된다. 그리고 계시록 21장이 그 완성의 비전을 보여준다. 66권은 창조에서 시작하여 새 창조로 끝나는 하나의 완결된 교향곡이다. 여기에 67번째 악장을 추가하는 것은 보완이 아니라 훼손이다.

바울은 이미 이 경계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갈라디아서 1:8

정경의 닫힘은 제한이 아니라 보호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사실이다. 정경이 닫혀 있으면,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는 모든 목소리를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숨겨진 복음서”도, “봉인이 해제된 비밀”도, “성경의 참뜻을 아는 유일한 해석자”도 — 닫힌 정경 앞에서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세 번 모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성경 밖의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기록된 말씀으로 충분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충분했던 것이 우리에게 부족하겠는가?


당신은 자유롭다

정경이 66권으로 닫혀 있다는 사실은, 첫인상과 달리 자유의 선언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성경에 숨겨진 뜻이 있다”고 말할 때, 당신은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성경의 뜻은 숨겨져 있지 않다. 구원에 필요한 진리는 평범한 신자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별한 해석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야말로, 에덴의 뱀이 변주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다.

66권은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말씀을 다 하신 분량이다. 이 정경 안에 창조의 의미가 있고, 타락의 진단이 있고, 십자가의 구속이 있고, 부활의 승리가 있고, 재림의 약속이 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이 66권 안에서 보내도,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물론 이 확신은 역사적 논증만으로 오지 않는다.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직접 증거하실 때,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뿌리를 내린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것을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라 불렀다.

정경은 닫혀 있다. 그러나 이 닫힌 책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도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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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