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는 진화의 부산물인가 — 기원 설명과 진리 주장의 거리

> 인지과학은 왜 인간이 신을 쉽게 믿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어떻게 믿음이 생겼는가'는 '그 믿음이 참인가'에 아직 답한 적이 없다.

- 분류(category): 미분류
- 태그: 변증, 과학과신앙, 진화심리학, 일반계시
- 게시일: 2026-09-17
- 수정일: —
- 원문(HTML): https://truth.ai.kr/blog/religion-evolutionary-byproduct/
- 컬렉션: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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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는 뇌가 만든 환상이다"

대학 교양 수업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교수가 파워포인트 한 장을 띄운다. **HADD**(과민 행위자 탐지 장치, Hyperactive Agency Detection Device). 원시인이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를 들었을 때, "그냥 바람이겠지" 하고 지나친 자는 잡아먹혔고, "누군가 있다"고 과잉 반응한 자는 살아남았다. 그 과잉 반응 회로가 진화 과정에서 고착되어, 오늘날 인간은 구름 속에서 얼굴을 보고, 우연의 사건 뒤에서 의도를 읽고, 우주 뒤에서 신을 본다는 것이다. 거기에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 덧붙으면 설명은 그럴듯해진다. 보이지 않는 타자에게 의도를 귀속시키는 인지 구조가 있다면, 신 관념은 그 구조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일 뿐이다.

많은 청년 신자가 이 설명 앞에서 당혹한다. "그렇다면 내 신앙도 뇌의 오작동인가." 그러나 이 당혹은 논증의 강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뒤섞임**에서 온다. 인지과학이 하는 말과 변증이 답해야 할 질문은 같은 평면 위에 있지 않다.

## 기원 질문과 진리 질문은 다른 질문이다

철학이 오래전에 이름 붙인 오류가 있다. **발생적 오류**(genetic fallacy)다. 어떤 믿음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설명하면서, 그 설명이 그 믿음의 **참 거짓**까지 판정한다고 착각하는 오류다.

예시를 보자. 수학자가 소수(素數) 정리를 발견한 과정은 그의 뇌 속 뉴런의 발화 패턴, 어린 시절의 교육, 진화적으로 주어진 패턴 인식 능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발생 경로가 아무리 자세히 기술되어도, 소수 정리가 **참인가**라는 질문에는 한 글자도 답해 주지 않는다. 소수 정리는 뇌 바깥의 수학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HADD 설명도 정확히 같은 지위에 있다. 그것이 옳다 해도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인간의 뇌는 신 관념을 받아들이기에 매우 적합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이 명제는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중립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인간이 그를 상상해 낸 경우에도, 신이 **실제로** 존재해서 그를 알도록 인간을 지으신 경우에도, 동일한 인지 구조가 관찰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가설에서는 **그 구조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창조주가 자기를 알도록 피조물을 지으셨다면, 피조물의 뇌 안에는 그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가 새겨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HADD는 **유신론의 반증**이 아니라 유신론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 같은 칼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이 설명 방식에는 더 치명적인 되돌아감이 있다. 만약 "인간이 어떤 명제를 쉽게 믿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이 그 명제를 환상으로 만든다면, 무신론자는 자기 논증의 토대 전체를 잃는다.

인간이 논리의 모순율을 받아들이도록 진화했다면, 모순율은 환상인가. 수학적 추론 능력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수학은 환상인가. 공감 능력과 정의감이 생존 전략이었다면, "집단 학살은 악하다"는 판단은 환상인가. 과학자들이 세계를 **규칙적·예측 가능한 것**으로 전제하는 성향 자체가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라면, 과학은 환상인가.

무신론자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의 논증 자체가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적 신념에만 발생적 기원으로 환원하는 칼을 들이대고, 자신이 의지하는 이성·논리·도덕·과학적 직관에는 그 칼을 대지 않는다. 이 **이중 잣대**야말로 이 논증의 가장 약한 고리다. 일관성을 요구하면 자기 파괴이고, 일관성을 포기하면 편견의 고백이다.

로이드존스 식으로 말하면, 이것은 과학의 결론이 아니라 **이미 내린 선택을 뒤에서 변호하는 수사**다. 그는 의사의 눈으로 현대 회의주의를 오래 관찰했다. 사람들이 신앙을 거부하는 이유는 대부분 데이터 부족이 아니라 **전제의 편향**이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진단이었다.

## 보편성은 오히려 증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인지과학이 보고하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종교적 직관이 **문화의 경계를 넘어 거의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 현대 도시까지, 인류학자가 찾아낸 어떤 문화도 초월자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결여하지 않았다. 무신론조차 역사적으로는 특정한 문화적 조건 안에서만 확산되는 예외 현상이다.

이 사실을 회의주의는 "환상조차 보편적이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같은 사실을 기독교는 2천 년 전에 이미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었다. 바빙크가 「개혁교의학」 제1권에서 일반 계시를 다루며 논증한 바가 바로 이것이다. 모든 민족 안에 **종교의 씨앗**(semen religionis)이 있다는 사실은 인류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신학적 증언**이다. 창조주가 모든 사람에게 자기를 알려 두셨기에, 그 흔적은 어떤 문화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칼뱅은 이 동일한 통찰을 더 오래전에 한 구절로 압축했다. 「기독교 강요」 1권 3장의 제목이 그것이다. **신 의식**(sensus divinitatis).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인간 마음 속에 본성적으로 심겨 있다는 것이다. 1권 3장 1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본성적 본능에 의해 신에 대한 어떤 감각이 심겨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칼뱅은 인지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신을 알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간학적 상수로 기록했다. 오늘의 인지과학은 다른 언어로 같은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의 진단은 더 날카롭다.

>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
>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 — 로마서 1:19-20

바울은 불신의 원인을 "정보 부족"이 아니라 "**핑계 없음**"에 둔다.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억누른다는 진단이다. 현대 인지과학이 발견한 "우리는 너무 쉽게 초월자를 감지한다"는 사실은, 이 본문 앞에서 반박이 아니라 **삽화**가 된다. 창조주가 인간을 그렇게 지으신 것이다.

## 기독교의 주장은 정확히 반대였다

결국 문제는 무엇을 주장했는가이다. 환원적 무신론은 기독교가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고 가정하고 공격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그 반대였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를 알도록 지으셨다.** 바울은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이 진리를 이방 철학자들 앞에 내려놓았다.

>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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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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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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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 17:26-28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바울은 인간이 신을 감지하는 능력이 **우연의 부산물**이 아니라 **설계된 지향성**이라고 말한다. 이 설계는 회의주의가 그토록 열심히 묘사하는 인지 구조와 외관상 구별되지 않는다. 구별은 현상에서가 아니라 해석에서 일어난다. 같은 지도를 두고 어떤 이는 "뇌의 실수"라 읽고, 어떤 이는 "창조주의 서명"이라 읽는다. 어느 쪽이 옳은가는 지도 자체가 아니라 지도 바깥의 증거, 곧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과 그 말씀 앞에서 결정된다.

그러니 "종교는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주장 앞에서 움츠릴 필요가 없다. 정중히 되물으면 된다. 진화가 인간의 인지를 신을 향해 열어 두었다는 사실이, 왜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되는가. 그 열림이 오히려 창조주의 서명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기원의 설명은 진리의 판결이 아니다.** 이 한 문장 앞에서, 종교를 환상으로 환원하려던 논증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여전히 오래된 초대다. 더듬어 찾는 자에게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는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