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 서신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3부: 마지막 부탁 — 목회서신과 전체 조감도

> 쇠사슬을 찬 노사도가 젊은 목회자에게 남긴 유언.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의 배경, 그리고 바울 13편을 하나로 묶는 지도.

- 분류(category): 미분류
- 태그: 바울서신, 신약배경, 목회서신, 디모데서, 디도서, 깊이읽기
- 게시일: 2026-04-29
- 수정일: —
- 원문(HTML): https://truth.ai.kr/blog/paul-epistles-context-3/
- 컬렉션: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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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사슬이 무거워지는 감옥에서

1부에서 우리는 바울의 편지가 특정 교회의 특정 위기에 대한 처방전임을 확인했다. 2부에서는 로마서라는 복음의 설계도와, 옥중에서 쓴 네 편의 편지를 펼쳤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한 가지 유형의 편지가 더 있다. 교회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 이른바 **목회서신**이다. 바울이 신뢰한 두 명의 젊은 동역자에게 쓴 편지들이고, 그중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편지**다. 쇠사슬이 점점 무거워지는 로마 감옥에서,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아는 사람이, 자기 뒤에 남을 교회의 미래를 젊은이에게 맡기는 편지. 그것이 바울의 마지막 목소리다.

다른 편지들이 "지금 이 위기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면, 이 세 편은 "**내가 떠난 뒤에 교회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룬다. 그래서 읽는 법이 다르다. 수신자는 한 사람이지만, 담긴 내용은 교회의 질서와 사역자의 임무 전체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젊은 동역자에게 위탁하고 있는 것이다.

## 편지의 현장 — 두 번의 로마 감옥 사이

사도행전 28장은 바울이 로마에서 셋집에 연금된 채 복음을 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초대교회의 전승과 바울 자신의 진술을 종합하면, 바울은 이 첫 번째 투옥에서 일단 풀려난 것으로 보인다. 석방된 바울은 에게해 지역과 그레데(크레타)를 돌며 사역을 이어갔고, 이 시기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맡고 있었다(딤전 1:3). 에베소는 3년간 바울이 집중적으로 사역한 도시였지만, 바울이 떠난 뒤 거짓 교사들이 침투하고 있었다. 디도는 그레데 교회를 맡고 있었다(딛 1:5). "그레데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딛 1:12)라는 고대 속담이 인용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섬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젊었고, 두 곳 모두 어려운 현장이었다.

그러다 주후 66-67년경, 네로의 박해가 본격화되면서 바울은 다시 체포되었다. 두 번째 투옥이다. 첫 투옥과 달리 이번에는 셋집이 아니라 지하 감옥(아마도 마메르티노 감옥)이었고, 재판은 처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떠났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남은 사람은 누가뿐이었다(딤후 4:11).

이 감옥에서 바울이 쓴 마지막 편지가 디모데후서다. 자기 죽음을 직감한 노사도가, 젊은 제자에게 급히 불러서 남긴 유언장이다.

## 배경을 알면 살아나는 구절 — 디모데전서와 디도서

디모데전서 3장 2-5절의 감독 자격 요건은 도덕 목록처럼 읽히기 쉽다.

>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
>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
> — 디모데전서 3:2-3

이 목록을 "좋은 사람이면 직분을 맡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개혁주의 전통이 직분자 선발에서 **신앙과 생활**(fides et mores)을 동시에 요구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품성과 교리는 분리되지 않는다. 디도서에서 이 원칙은 더 분명해진다.

>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 디도서 1:9

바른 교리를 붙드는 자만이 참된 품성을 지킬 수 있고, 참된 품성을 지닌 자만이 바른 교리를 신뢰 있게 가르친다. 이 둘이 결합될 때 사역자는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리의 증인**이 된다. 칼뱅이 『기독교강요』 4권에서 길게 논한 그대로다 — 감독의 자격에서 가르침의 능력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본질 요건이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이 편지 전체의 열쇠다.

>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 디모데전서 3:15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 — 이것이 목회서신 전체의 요약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다. 교회가 진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떠받치고 전수하는 장치다. 바빙크가 『개혁교의학』에서 교회론을 **유기체**(organism)와 **제도**(institution) 두 측면으로 나누어 다룬 까닭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에베소서가 교회의 유기적 본질(그리스도의 몸)을 선언했다면, 목회서신은 그 유기체를 지켜 내는 제도적 구조를 가르친다.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제도는 유기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레데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딛 1:12)라는 인용도 배경을 알면 재미있다. 바울이 그레데 문화를 싸잡아 비난한 것이 아니다. 기원전 6세기 그레데의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바울은 그레데 교회가 자기 섬의 속담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서는 문화의 악순환이 끊어져야 한다는 선언이다.

## 배경을 알면 살아나는 구절 — 디모데후서

디모데후서 4장 6-8절은 성경에서 가장 장엄한 고별사다.

>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
>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 — 디모데후서 4:6-8

"전제"(libation)는 제사 용어다. 포도주를 제단 위에 붓는 행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이 언어로 표현한다.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었다는 고백이다. 좌절의 냄새가 아니라 완결의 냄새다.

원어를 보면 더 선명하다. "싸우고"(**ἠγώνισμαι**), "마치고"(**τετέλεκα**), "지켰으니"(**τετήρηκα**) — 세 동사가 모두 완료형이다. 완료형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도 결과로 유효하다"는 시제다. "내가 싸웠고, 그 싸움은 끝났다"는 단순 과거가 아니라, "내가 싸웠고, 그 싸움의 결과는 지금도 살아 있다"는 선언이다.

특히 "마치고"(τετέλεκα)는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와 어근이 같다.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이 한 사도의 삶에서 열매 맺었다**는 고백이다. 바울의 완성은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에 접붙여진 완성이다.

그래서 다음 구절의 수동태에 주목해야 한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 면류관은 바울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예비된** 것이다. 은혜로 시작된 것이 은혜로 완성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1항이 고백하는 **성도의 견인**이다.

>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받아들이신 자들, 그의 성령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궁극적으로 타락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안에서 끝까지 견인할 것이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1

바울이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은 강한 의지력 때문이 아니다. **부르신 분이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이 확신이 없다면 사형 선고 앞에서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쓸 수 없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은 이 편지의 설계도다.

>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디모데후서 2:2

바울 → 디모데 → 충성된 사람들 → 또 다른 사람들. **4세대 전수의 설계도**다. 목회서신이 "계승 문서"인 이유는 단순히 후계자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 자체가 전수되어야 하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사람의 인격과 역사를 통해 성경을 주셨듯, 복음도 사람과 공동체의 신실함을 통해 흘러 내려온다.

## 13편의 조감도 — 지도의 완성

이제 바울의 편지 13편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에 섰다. 각 편지는 다른 수신자와 다른 위기를 가지지만, 하나의 중심을 가리킨다.

| 구분 | 서신 | 성격 |
|------|------|------|
| 초기 서신 | 갈·살전후·고전후 | 갓 세워진 교회의 위기 대응 처방전 |
| 복음의 설계도 | 로마서 | 복음 전체의 건축학 |
| 옥중서신 | 엡·빌·골·몬 | 감옥에서 드러난 복음의 깊이 |
| 목회서신 | 딤전·딤후·딛 | 다음 세대에 넘기는 복음의 불씨 |

바빙크는 바울 신학을 네 축으로 정리한다. **구원론**(로마서·갈라디아서가 기초를 놓는다), **교회론**(고린도서·에베소서·목회서신), **종말론**(데살로니가서·고전 15장·빌립보서), **윤리**(로마서 12장의 "그러므로"가 경첩이 되어 교리를 삶으로 연결한다). 이 네 축이 13편 전체에 분산되어 있고, 어느 편지도 네 축 중 하나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에서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자들과 싸운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 복음을 체계적으로 펼쳤고, 고린도서에서 교회 생활로 구현했고, 옥중서신에서 극한 상황이 오히려 복음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목회서신에서 다음 세대 사역자들에게 복음을 위탁했다. **복음은 상황이 극한에 달할 때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디모데후서 1장 13-14절이 이 전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
>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 — 디모데후서 1:13-14

바른 말(건전한 가르침의 윤곽)을 지키는 것과 성령 안에서 지키는 것 — 이 둘은 하나다. **교리 없는 경건은 공허하고, 성령 없는 교리는 죽어 있다.**

## 오늘 우리에게 — 세 개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1부에서 소개한 세 질문이 있었다. 바울은 어디서 이 편지를 썼는가, 수신자의 긴박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처음 편지를 받아 든 사람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목회서신을 읽을 때 이 질문을 다시 던져 보라.

바울은 어디서 이 편지를 썼는가 —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마지막 자유인의 시간에, 디모데후서는 처형을 앞둔 지하 감옥에서 썼다. 수신자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 에베소와 그레데의 거짓 교사들, 그리고 바울이 떠난 뒤의 교회를 지켜야 할 젊은 목회자의 중압감이었다. 편지를 받아 든 디모데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 스승의 죽음을 예감하며,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을 것이다.

이 세 편이 오늘 한국 교회에 주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있는가. 프로그램인가, 건물인가, 조직인가 — 아니면 **미쁜 말씀의 가르침**인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긴 것은 교회 조직의 노하우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지켜야 할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 편의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 사실이 남는다. 바울의 13편은 지금 여기 있다. 갈라디아서의 분노도, 로마서의 장엄함도, 빌립보서의 기쁨도, 디모데후서의 고별사도 — 모두 한 책 안에 보존되어 우리 손에 건너왔다. 그것은 디모데가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켰기 때문이다. 지킨 자가 있었기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편지는 우리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