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서는 왜 에녹서를 인용했는가 — 정경 밖 문서를 인용한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유다서 14-15절은 비정경 문서인 에녹서의 내용을 인용한다. 이것이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가, 아니면 성령의 주권적 영감을 드러내는가.

- 분류(category): 미분류
- 태그: 성경론, 정경, 변증, 유다서
- 게시일: 2026-04-26
- 수정일: —
- 원문(HTML): https://truth.ai.kr/blog/jude-enoch-citation/
- 컬렉션: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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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는 질문 하나

"유다서가 외경을 인용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그러면 성경도 결국 사람이 이것저것 짜깁기한 거 아닙니까?"

신학 유튜브를 접한 청년이, 혹은 신앙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누군가가 이 질문을 던진다. 질문 자체는 정직하다. 그러나 이 질문이 향하는 곳은 두 갈래다. 하나는 진리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려 그 아래 서지 않으려는 길이다.

먼저 문제의 본문을 직접 읽자.

>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유다서 1:14-15

이 구절은 에녹서(1 Enoch) 1:9와 거의 동일하다. 이 사실을 부정할 이유도, 회피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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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은 승인이 아니다

핵심적인 혼동이 하나 있다. **어떤 문서를 인용하는 것**과 **그 문서 전체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연설에서 이방 시인 아라투스의 시를 인용했다.

>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 사도행전 17:28

또한 디도서에서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했다.

>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 디도서 1:12

고린도전서에서는 메난드로스의 격언을 가져왔다.

>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 고린도전서 15:33

이 인용들로 인해 아라투스의 시집이나 메난드로스의 희곡이 정경이 되었는가? 아무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판사가 재판에서 목격자의 진술을 인용한다고 해서 목격자의 일기장 전체가 판결문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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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은 기자를 통해 역사하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성경의 영감은 어디에 임하는가? **인용된 자료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기자에게 임한다.** 디모데후서가 증언하는 바는 이것이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디모데후서 3:16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θεόπνευστος, 테오프뉴스토스)은 성경 **본문**이 하나님의 숨결로 산출되었다는 뜻이지, 기자가 참고한 모든 자료가 영감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유기적 영감론의 통찰이 빛난다. 성령께서는 유다의 인격과 문화적 기억과 문학적 언어를 파괴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통해** 역사하셨다. 1세기 유대 그리스도인에게 에녹서는 정경은 아니었으나, 경건한 묵상의 일부로서 공동체의 신앙적 상상력 안에 살아 있던 문헌이었다. 성령께서는 유다가 이미 알고 있던 그 언어를 취하시어, 새로운 신학적 목적 아래 재배치하신 것이다. 광부가 돌무더기에서 금을 캐낼 때, 금의 가치는 돌무더기 전체가 아니라 광부의 선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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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물의 출처는 그릇이 아니라 강이다

더 깊은 층위가 있다. 유다서 14-15절이 담고 있는 사상 — 주께서 거룩한 자들과 함께 임하시어 경건하지 않은 자를 심판하신다 — 은 에녹서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구약 예언 전통의 가장 오래된 핵심 주제다.

>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 시편 50:3-4

>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 스가랴 14:5

유다는 이 오래된 강물을 에녹서라는 그릇에서 한 모금 떠 마신 것이다. 물의 출처는 그릇이 아니라 강 자체에 있다. 유다가 인용한 내용이 에녹서에도 있다는 사실이 에녹서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서 안에서 성령의 재승인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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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명료한 선언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3항은 이렇게 고백한다.

> "일반적으로 외경이라 불리는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성경 정경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어떤 권위도 가지지 않는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3

에녹서가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정경으로 수용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경의 결정은 한 지역 교회의 관행이 아니라 보편 교회의 역사적 합의에 달려 있으며, 에녹서는 사도적 기원, 교리적 일관성, 보편적 수용이라는 정경의 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에녹서의 천사론 — 타락한 천사가 인간 여성과 혼인하여 네피림을 낳았다는 서사 — 은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과 충돌한다.

>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마태복음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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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질문이 가려 하는 곳

이 논점을 미끼로 사용하는 집단들이 있다. "성경에 에녹서가 인용됐다면, 교회가 숨긴 성경이 더 있을 수도 있지 않나?"라는 논리다. 성경의 비유를 독점 해석한다고 주장하는 종파, 절기 준수와 준경전적 문헌의 권위를 강조하는 집단 — 이들의 공통된 전략은 정경의 신뢰성을 흔들어 자신들의 추가 계시나 지도자의 권위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이 질문을 품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다서의 에녹서 인용은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도리어 이것은 성령의 영감이 얼마나 주권적인지를 보여준다. 성령께서는 이방 시인의 격언도, 유대 묵시문학의 전승도, 어떤 재료든 취하시어 무오한 말씀으로 봉인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봉인된 것은 인용된 자료가 아니라, 오직 성경 기자를 통해 기록된 본문이다.

태양을 보기 위해 다른 빛이 필요하지 않다. 성경은 그 자체로 신적 광채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 빛을 보는 눈을 열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