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서 8장

> 하나님의 법정은 이미 판결을 내렸다. 롬 8:1의 선언이 어디에 기초하는지, 그리고 왜 이것이 방종이 아닌 자유인지를 읽는다.

- 분류(category): 미분류
- 태그: 성경본문탐구, 신약, 로마서, 칭의, 성령
- 게시일: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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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HTML): https://truth.ai.kr/blog/bible-study-rom8/
- 컬렉션: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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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로마서 8:1–17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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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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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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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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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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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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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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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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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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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산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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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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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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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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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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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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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 로마서 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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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이 아니라 판결이다

죄책감은 신자에게 낯선 감정이 아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기도할 때마다 자격 없음을 느끼며, "나 같은 사람이 정말 구원받은 것인가"라는 의심이 새벽 기도 중에 떠오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의심 앞에서 로마서 8장 1절은 뜻밖의 언어를 사용한다.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위로가 아니다. **판결**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 판결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판결이 우리를 방종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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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 어둠 끝에 도착한 선언

로마서 8장의 첫 단어 "그러므로"(ἄρα οὖν)는 장식이 아니라 논리적 귀결이다. 바울은 7장 전체를 통해 율법 아래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비참을 낱낱이 드러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절망의 고백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에서 절정에 이른다.

7장은 의지의 실패 보고서다. 율법은 선하지만 그것을 지킬 힘이 인간에게 없다는 진단서다. 그러므로 8장 1절은 그 진단 뒤에 오는 처방이 아니라 **선고**다.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선고. 바울이 7장의 탄식을 그토록 길게 쓴 것은 8장의 선언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를 독자가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첫 빛줄기의 찬란함은 더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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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예수 안에" — 연합이 전가의 토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이 전치사구 "안에"(ἐν)가 정죄 없음의 조건이자 근거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심리적 상태가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것을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라 부른다.

연합은 비유가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20

이것은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가 바뀌었다는 선언이다. 성령은 이 연합의 끈(vinculum)이다. 성령이 신자 안에 거하심으로써(롬 8:9)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놓이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놓인 자에게는 그분의 의가 전가된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연합이 먼저이고, 전가는 연합의 결과다.** 연합 없는 전가는 법정적 허구가 되고, 전가 없는 연합은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그의 것으로 셈해지고, 그 결과 하나님의 법정에서 "정죄 없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1절에 조건절이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믿음이 완전한 자에게는"도 아니고, "죄를 다 고백한 자에게는"도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조건은 단 하나,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없느냐다. 그리고 그 안에 있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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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이되 방종이 아닌 이유 — 성령이 삶의 방향을 바꾸신다

여기서 오해가 시작된다. "정죄 없음"을 선언받았으니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는 결론이 가능한가? 바울은 이 물음을 예상한 듯 즉시 4절로 넘어간다.

>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로마서 8:4

1절만 읽고 4절을 무시하는 것은 판결문의 전반부만 읽고 후반부를 찢어버리는 것과 같다. 정죄 없음의 목적은 율법 폐기가 아니라 **율법의 요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만 그 이루어짐의 주체가 바뀌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2절이 말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새로운 율법 조항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이 신자 안에서 작동시키는 **지배 원리**(governing principle)다. 죄와 사망의 법 — 타락한 인간을 묶어두던 중력 — 이 깨어지고, 새로운 중력이 작동한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에게는 삶의 방향성 자체가 전환된다.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 부른다.

5절에서 7절까지의 대비는 선명하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이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이것은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의 차이**다. 중생한 자와 중생하지 못한 자의 근본적 방향이 다르다. 도덕적 개혁은 행동을 교정하지만, 복음은 마음의 근원을 바꾼다.

그러므로 13절의 명령 —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은 율법적 강박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생명 안에서의 자연스러운 전투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생명이다. 다만 그 생명이 가시덤불을 쳐내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이것이 성화의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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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본문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방식 —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로마서 8장 전체의 신학적 무게중심은 3절에 있다.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 로마서 8:3

율법은 죄를 진단할 수 있었지만 치유할 수 없었다. 거울은 얼굴의 더러움을 보여주지만 씻어주지 못한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 어떻게?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라는 표현은 정밀하다. 그리스도는 죄 있는 육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모양**으로 오셨다. 참된 인성을 취하셨되 죄의 오염은 없으셨다. 그리고 바로 그 육신 안에서 하나님이 "죄를 정하셨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몸 위에서 집행되었다.

여기에 삼위일체적 구조가 드러난다. **성부**가 아들을 보내시고(작정), **성자**가 육신에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시며(성취), **성령**이 그 구속의 효력을 신자에게 적용하신다(적용). 정죄 없음은 이 삼위일체적 사역의 수렴점이다. 성부의 계획, 성자의 대속, 성령의 내주가 한 점에서 만나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선언을 만든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없었다면 정죄 없음은 불의한 면제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의 몸 위에서 철저히 심판하셨다.** 그렇기에 이 무죄 판결은 정의를 우회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관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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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에게 — 종의 두려움에서 아들의 담대함으로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로마서 8:15

15절이 "양자의 영"을 말할 때, 이것은 법정적 양자됨이 내적 확신으로 현실화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자세가 바뀐다. 죄인이 심판관 앞에 서는 공포가 아니라,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담대함이다. "아빠"(Αββα)는 아람어의 친밀한 호칭으로, 종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단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사탄의 정죄감과 성령의 책망은 다르다.**

사탄의 정죄감은 "네 죄가 너무 크다, 너는 자격이 없다"고 속삭이며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방향이 원심력이다. 반면 성령의 책망은 구체적인 죄를 가리키되, 그 죄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게 한다. 방향이 구심력이다. 사탄의 음성을 들은 자는 하나님을 피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은 자는 하나님께 달려간다.

죄를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죽은 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죄를 슬퍼하되 그 슬픔이 당신을 십자가 앞으로 데려간다면, 그것은 사망의 슬픔이 아니라 생명의 슬픔이다. 당신의 감정이 진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정이 이미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17절은 이 양자됨의 놀라운 귀결을 보여준다.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로마서 8:17

상속자는 고난을 통과한다. 고난은 영광의 반대편이 아니라 영광에 이르는 길 위에 놓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분의 의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고난도 나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끝에 함께 누릴 영광이 기다린다.

로마서 8장 1절의 "결코"는 조건부가 아니다. "이제"는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이다. 이 판결은 내려졌고, 번복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영원히 유효하다.